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8일] 스미턴

[오늘의 경제소사/6월8일] 스미턴 권홍우 존 스미턴(Jonn Smeaton). 등대로 성공하고 등대처럼 살다 간 사람이다. 산업혁명 초기의 교통 인프라 구축에 기여한 인물. 토목공학의 아버지다. 1724년 6월8일 요크셔에서 태어난 그의 당초 진로는 법률가. 부친의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교육을 받던 중 고객인 왕립학회 회원들과 교류하며 과학에 관심을 돌렸다. 집안의 반대 속에 1748년(24세)에는 아예 항해 및 과학실험기구점을 차렸다. 1753년 풍력과 수력을 이용한 기계에 관한 논문으로 왕립학회 회원 선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던 그는 1756년 이름을 떨치는 계기를 맞았다. 에디스턴 등대 재건을 의뢰받은 것. 1689년 건립된 이 목조 등대는 해양 개척에 국력을 쏟던 영국의 자랑이자 고민거리였다. 폴리머스항에서 21㎞ 떨어진 바다 속 모래톱에 세워져 기술력을 과시했으나 폭풍과 화재로 두 번이나 유실됐기 때문이다. 스미턴은 석조 등대를 택했다. 문제는 접착제. 아무리 큰 돌들도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고민하던 그는 점토질 석회석을 불에 구운 후 가루를 내어 물과 섞어 사용하는 방식의 시멘트를 처음 선보였다. 3년 공사 끝에 튼튼한 등대가 완성되자 일감이 쏟아졌다. 대량 생산된 면직물 등을 나르기 위해 곳곳에서 수로를 정비하고 운하를 뚫던 시절, 난공사에 봉착한 사람들은 그를 찾았다. 영국의 주요 운하와 교량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증기기관에도 손대 그가 개조한 뉴커먼 증기기관은 두 배의 효율을 발휘하며 제임스 와트 이전까지 최고로 꼽혔다. 말년에 주력한 것은 토목공학 기술 보급. 1771년 세계 최초로 토목학회를 설립했다. 1792년 10월 68세로 몰(歿). 영국 토목학회는 20세기 초반까지 스미토니안협회로 불렸다. 입력시간 : 2006/06/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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