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선진국의 길 GQ에 있다] <3> '우물안 개구리'식 수도권 규제

'손발 묶인' 수도권 경쟁력 갈수록 추락<br>'균형발전' 명분 밀려 투자 규제…성장엔진役 못해<br>총생산, 中 창장에도 뒤져 동북아 6개권역중 5위<br>지방은 기업도시 육성등 통해 경쟁력 강화 도모를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경제권역은 한국의 수도권을 비롯해 일본의 간토(도쿄ㆍ요코하마ㆍ지바)과 간사이(오사카ㆍ교토ㆍ고베), 중국의 베이징ㆍ톈진, 창장 삼각주(상하이ㆍ쑤저우ㆍ항저우), 주장 삼각주(광저우ㆍ퉁관ㆍ홍콩) 등 크게 6개다. 이들 지역은 각 나라의 대표적인 경제권역으로 자국의 경제력을 대표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도권의 지역 내 총생산(GRDP) 규모는 3,200억달러로 이들 6개 권역 중 5위로 추락했다. 2002년에는 3위였으나 불과 3년 만에 중국의 창장 삼각주와 주장 삼각주에 밀려 두 계단이나 떨어진 것이다. 일본 간토 지역의 GRDP는 1조6,400억달러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ㆍ2005년 7,910억달러)의 2배를 넘는다. 이처럼 동아시아 경제거점이라는 수도권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는 마당에 수도권 규제를 통한 지역 균형발전은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리 리처드슨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서울은 동아시아에서 상하이ㆍ홍콩ㆍ베이징과 경쟁하는 국제도시”라며 “지역균형이라는 그릇된 목표를 위해 이를 규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의 경쟁력 수준도 세계적인 도시보다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6년 ‘글로벌 경제시대의 도시 경쟁력’ 보고서에서 “서울ㆍ부산은 국가 성장엔진으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며 삶의 질도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반면 도쿄ㆍ런던ㆍ파리ㆍ뉴욕 등은 최고 수준의 글로벌 접근망을 구축하고 복수의 지식집약형 클러스터를 바탕으로 최고의 도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도권 규제가 지역발전인가=수도권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수도권 규제를 통한 지방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행정도시 건설 등에 이어 최근 발표한 2단계 국토균형발전대책에서는 지방이전 기업의 법인세 인하 및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 제외 등의 후속책을 내놓았다. 반면 프랑스ㆍ영국ㆍ일본 등은 수도권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관련 규제를 푼 지 오래다. 이에 대해 OECD의 ‘도시경쟁력’ 보고서에서는 “수도권 규제로 다른 지역의 경제성장이 이뤄진 예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도 “인구와 산업 집중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은 잘못이며 수도권 규제를 통해 지방을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뚜렷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5년간 정부의 수도권 규제를 통한 지방발전 전략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00~2005년 수도권 인구는 2.1% 늘었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인구가 0.1~0.5% 줄었다. 또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늘어난 제조업 사업체 가운데 60%인 1만3,508개가 수도권에 살림을 차렸다. 참여정부의 국토 균형발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1차 국가균형발전계획에 대한 분석 및 평가’ 보고서에서 “2004~2005년 GRDP 증가율을 볼 때 전국적인 균형발전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수도권을 규제해도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지 않고 경제활동 여건이 더 좋은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것도 문제다.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기업의 40%가 10년 내에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또 2005년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 결과 수도권 규제 때문에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을 가진 기업은 9%에 불과했다. ◇전국토의 경쟁력 강화 시급=이 때문에 국가의 성장 엔진인 대도시의 경쟁력을 더 키워 경제권역의 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역 발전은 수도권 규제가 아니라 ▦기업도시 육성 ▦기업의 지방투자 확대 유도 ▦지방세 확대를 통한 지방자치단체의 자립기반 확립 ▦산업 클러스터 육성 등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것.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참여정부의 국토 균형발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공기관 이전 등과 같은 수단이나 방법이 문제”라며 “수도권의 자원을 지역에 나눠주는 게 아니라 동북아 경제권역에서 우리 국토 전체의 성장잠재력 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수석연구원은 “지방 대도시의 경쟁력 강화나 거점도시 육성 등이 지역 균형발전에 효과적”이라며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경우 증가하는 국세와 지방세ㆍ개발이익 등을 지방에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기업이나 인력ㆍ자본 등을 수도권에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지방에서 빨아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역 균형발전을 기본적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동북아 금융 허브를 한다면서 금융 관련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동북아 권역의 경제전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수도권과 지방, 동남권과 서남권 등의 지역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각 지역의 핵심 역량에 기초해 특성화된 지역발전전략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국토균형발전 정책' 日은 6년전에 폐기
영국과 프랑스는 공장허가제 완화
일본은 우리나라의 수도권 공장총량제에 해당하는 공업 등 제한법과 공장재배치촉진법을 지난 2002년, 2006년에 각각 폐지했다. 기업의 해외 이전이 자유로운 글로벌 경제에서 공장의 수도권 집중을 규제, 지방으로 분산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2001년 국토균형발전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지난 40여년간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1,500조엔의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가 미미했던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과감한 규제개혁은 대기업과 제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더 나아가 도쿄 대도시권 활성화를 뛰어넘어 '전국토의 도쿄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시속 500㎞ 이상의 초고속 자기부상 철도망이 오는 2020년 개통되면 일본 제2의 경제권인 오사카 등도 일일 통근권으로 통합돼 도쿄 영향권에 들 것으로 전망된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람과 자금ㆍ정보의 도쿄 집중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차라리 일본의 도쿄화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인 경제활성화대책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ㆍ영국ㆍ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광역도시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정보기술과 교통망 발전, 서비스 경제 발달과 지식사회 진전 등으로 대도시 집중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게 이들 국가의 판단이다. 더구나 지역경제의 통합흐름이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한 수도권의 광역화. 각 국가의 수도권은 규모가 큰데다 상징성이 있어 광역화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도권에 대한 공장 및 사무실 허가제 등을 완화했다. 프랑스의 경우 80년 대 초 중앙정부의 강제적 균형발전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구조적으로도 근거가 약하다는 합의가 형성돼 지난 40년간의 공간 재분배 전략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대도시와 도시적 연결망 증대, 우수한 중심지역 증진, 새로운 정보기술에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책을 마련했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높은 땅값, 교통혼잡 등에도 불구하고 대도시권이 부상하는 이유는 집적경제의 이점이 단점을 능가하기 때문"이라며 "각국이 성장 엔진인 수도권을 고도화해 글로벌 기업 유치 등을 통해 경제권역의 중심지로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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