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부정적 사고와 비판주의가 지나치게 판치고 있다. 사소한 모임에서도 남을 험담하는 화제가 주종을 이룬다. 정부나 정치가 또는 재벌이나 돈많은 사람에서 심지어 가까운 친구까지 누구나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심지어는 자기만 빼고는 다 도둑놈이고 못 믿겠다는 식이다.신문과 방송의 뉴스·사설·칼럼은 물론 코미디 프로조차 이런 류의 냉소적 비판주의가 지배적이다.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부정적인 비판에 동원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름있는 교수는 강단에서 우선 정부 시책이나 위정자부터 몰아붙여야 자신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며, 저명한 문필가 역시 수려한 문장으로 냉혹한 비판에 앞서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상 온통 남을 비난하는 소리만 난무하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렇게 부정적 비판이 지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그러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은 누가 하고 미래는 누가 설계하는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식으로 논객만 많은 것은 아닐까?
물론 민주 사회는 건실한 비판이 바탕이 되고 비판의 저변에는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비판과 부정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만연화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사실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비관성이나 낙관성의 수준이 있고 부정적 분위기나 비관성은 그 사회의 활기와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미국심리학회 회장인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발전하는 개인이나 사회의 활기는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발전하는 사회는 비판과 함께 긍정적 사고가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유럽인 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실용주의(프래그마티즘)의 근저에는 건국 초기 지도층의 청교도적인 긍정주의가 잠재되어 있다.
우리의 삶과 생활 그리고 사회를 긍정적인 면에서 해석하고 희망을 설계하는 말 없는 다수가 있어야 우리 사회에 비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