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天池는 끝내 보이지 않고…

걸어서 올라간 백두산지척도 분간할수 없다. 어둠이 덮씌웠다가는 언제 그랬냐 싶게 햇살이 내비치기를 거듭한다. 비가 억수 같은 7월의 백두산. 지친 몸은 한 걸음도 옮기기 힘겹다. 비껴 내리치는 비바람엔 알뜰하게 뒤집어 쓴 우의도 소용 없고, 꽁꽁 싸맨 등산화 속까지 이내 물이 찰랑찰랑하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중국쪽에서 출발하는 백두산 등산로 기점의 한 곳인 이도백하 온천구를 출발해 선녀가 목욕을 즐겼다는 천지의 축소판 소천지를 지나 끝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길을 걸은지 두 시간쯤 됐을까. 구성진 민요가락이 들려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와요 북간도 벌판이 좋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를 넘어간다." 동행한 등산객의 휴대용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곡목은 '상주 아리랑'. "일제시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왜경에 쫓겨 목숨을 걸고 넘던 고개가 바로 이 백두산이예요." 50대 후반 초로에 접어든 등산객의 설명이다. 그렇다. 당시 백두산은 압제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우리 땅을 등지고 낯선 이국으로 피신처를 찾아 줄을 잇던 길목이다. 그러니까 소천지와 은류폭포를 거쳐 천지를 감상하러 차일봉으로 향하는 이 등산로는 그 때 선조들의 하산길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 민족의 뼈 저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지금까지 그 설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백두산의 절경은 누구라도 감탄할 만큼 빼어나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휴화산으로 장군봉(2,750m), 망천후(2,712m), 비류봉(2,580m), 백암산(2,670m), 차일봉(2,596m), 층암산(2,691m), 마천우(2,691m) 등 해발 2,500m이상인 봉우리 만도 16개나 된다. 특히 요즘 이 곳 야생화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백두산 관광에서 단연 으뜸은 천지. 화산폭발로 형성된 칼데라호 천지는 수면의 해발 고도 2,189m로 전세계 화산호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명승지이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는 천지의 비경을 보는 게 필생의 꿈이다. 이번 등산 팀도 대부분 그 신비경을 갈망하면서 여정에 올랐다. 그러나 천지는 좀처럼 제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열흘이면 하루나 볼까 말까예요." 현지 안내인의 설명이다. 날씨가 비교적 좋은 6~9월에도 천지를 만날 확률이 5분의 1 밖에 안된다고 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일봉을 향했던 것도 오직 민족의 성지인 천지를 '알현'하려는 열망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일기가 변한다고 하니 4~5시간 산행에도 운만 좋으면 천지를 만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주 아리랑'에 취해 다시 걸음을 재촉해 은류 폭포와 만년설에 인사하고, 드넓은 초원에 융단처럼 펼쳐진 들꽃들과 정담을 나누면서 한 시간쯤 오르니 '쨍'하고 햇살이 비쳤다. 차일봉 밑자락에 멈춰 섰다. 저 건너 천지물을 모아 장백폭포로 안내하는 물길인 달문 사이로 천지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일순간 "와!" 함성이 터지고, 기념촬영을 하려고 저마다 사진기를 꺼내느라 부산했다. 그러나 1분이나 됐을까. 사방은 다시 어둠에 휩싸이고 천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차일봉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날 천지는 끝내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심파조이지만 일행은 한결 같이 다짐했다. "통일이 되면 조국 땅에서 천지를 꼭 만나리. 백두산 이모저모 ■ 백두산 등산로 ①이도백하(온천구)~소천지~은류폭포~차일봉~천지(4시간) ②장백폭포~천지~천문봉~흑풍구~고래등~원시림~사스래폭포~온천장(6시간) ③천문봉(지프로)~화구벽~흑풍구~온천구(6시간) ■ 백두산 트레킹 준비물 백두산은 밤, 낮 기온차가 심하고 비가 올 때 많기 때문에 방풍ㆍ방수 옷이 필수적이다. 또한 장시간 산행을 위해 트레킹 신발이 필요하다. 모자 선글라스 자외선차단크림 보온남방셔츠 등산조끼 비상식량 등을 챙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소화제 설사 감기몸살약 등을 가져가는게 좋다. ■ 여행상품 미사연산악회(www.misayeon.pe.kr)는 오는 8월 14~19일(105만원) 백두산 능선 등반과 북경관광을 겸한 상품과 8월 15~19일(99만8,000원) 백두산 능선 등반 상품을 판매한다. 백두산 등반의 경우 첫날은 천문봉 화구벽 천지 철활봉 흑풍구(5시간)를 둘러보고, 둘째 날은 소천지 차일봉 녹명봉 백운봉(6시간)을 오르내린다. ■ 백두산의 야생화 백두산엔 여름이 없다. 8월까지도 잔설이 남아있는 백두산은 6~9월 야생화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드넓은 초원에 알알이 박힌 황금빛 두견화는 산행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준다. 이밖에 진분홍 털개불알꽃, 황새송외다리, 장백파랭이, 노란매발톱, 털지선, 날개하늘나리, 자주꽃방맹이, 애기금매화, 산미나리아재비, 노란만병초 등이 거대한 화원을 장식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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