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주일 한국대사는 부임 후 첫 대외 행사로 이날 추념식에 참석해 "재일동포들은 1919년 2·8 독립선언으로 3·1 운동의 씨앗을 만드는가 하면 6·25 전쟁 때는 642명의 학도의용군이 자진해서 전쟁터로 향하는 등 민족사의 고비마다 구국의 대열에 앞장섰다"며 "정부는 이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이후 민단 중앙본부 부근에 있는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권태환(52) 주일 한국대사관 국방 무관(육군 대령)이 기념비 앞에서 이봉남(94) 회장에게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한국인 청년·학생 642명이 자진해 직장과 학업을 중단한 채 유엔군 일원으로 인천상륙 작전과 원산·이원 상륙작전, 갑산·혜산진 탈환작전, 백마고지 전투 등에 참가해 135명이 전사했다.
재일 학도의용군들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후 가족들이 있는 일본으로 귀환하려 했지만 일본 정부가 1952년 4월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근거로 재입국을 거부한 탓에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재일 학도의용군동지회는 1973년 국립묘지와 1979년 인천 수봉공원, 1989년 재일 민단 중앙본부 부근에 참전 기념비를 세웠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