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8일] 와우아파트 붕괴


1970년 4월8일 오전6시30분, 서울의 시민아파트 한 동이 폭삭 주저앉았다. 현장은 참혹했다. 입주예정 30가구 가운데 먼저 들어온 15가구 주민 41명이 중경상을 입고 33명이 깔려 죽었다. 사고 발생 나흘 전 금이 갔다는 주민들의 경고를 받아들였어도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떻게 준공 4개월 된 아파트가 기둥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졌을까. ‘불도저식 행정과 부실공사’ 탓이다. 와우아파트는 설계와 시공ㆍ감리까지 부실과 총체적 부패 그 자체였다. 쌀 한 가마니에 5,220원 하던 시절, 시공비가 평당 1만원에도 못 미쳤다. 당초 공사비는 평당 2만원꼴이었지만 경험 없는 업체가 계약을 따내 커미션만 챙기고 시공은 무허가 업체에 맡기는 과정에서 시공비가 새나갈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공사비는 부실시공을 불렀다. 기둥 하나에 70개씩 들어가야 할 철근은 불과 5개만 쓰였다. 건설현장의 금기사항인 한겨울의 콘트리트 시공은 배합마저 엉망이었다. 시멘트 대신 모래가 대부분인데다 한 지게에 30~40원씩 줘야 하는 물을 아낀다고 제대로 섞지도 않았다. 자재와 자금 부족에도 와우지구 아파트단지(15개동)가 착공 6개월 만에 완공됐다는 ‘실적’은 부실시공을 기획하고 자재를 빼돌린 공무원들에게 돌아갔으나 국제적 망신을 샀다. 붕괴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서울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가 열렸기 때문. ‘한국의 발전상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유치한 국제대회에서 치부만 드러낸 꼴이 됐다. ‘부실 공화국 한국’은 옛말일까. 그렇지 않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빨리빨리 유전자’의 생명력은 끈질기기만 하다. 불편한 진실과 부패ㆍ불도저의 추억이 뒤엉킨 채 국토를 가로지르는 ‘삽질’이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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