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정권을 축출하고 정권 교체를 이루자는 내용의 미 국방부 관리들의 메모가 최근 부시 행정부 핵심 인사들 사이에 회람됐다고 뉴욕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이를 통해 이라크 정책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불거졌던 정책 대결이 북한 문제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중국과의 3자 협상을 승인하기 수일 전 미국이 중국과 함께 압력을 가해 북한 지도부를 축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메모를 정부 내 요인들에게 회람시켰다.
메모는 북한과의 대화에 반대하는 국방부 팀이 군사행동이 아닌 외교적 압력을 통해 북한 정권을 교체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북한 정권교체는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이 아니다”라며 메모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또 부시 행정부 일부 인사들은 “국방부 메모가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의 논의용으로 마련됐을 뿐 럼스펠드 장관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럼스펠드 장관의 대변인은 “럼스펠드가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북한 무장해제라는 부시 대통령의 전략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며 메모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메모의 내용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대다수 외교 전문가들은 “북미 대화의 중개자 역할을 해 온 중국이 미국의 북한 정부 전복 기도에 동참할 것으로 보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 정부 내 일부 인사들은 미국의 대북 핵무기 포기 압력을 지난 해 이라크에 유엔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장관은 지금은 외교수단을 강구할 때라고 주장하면서도 군사공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미국이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지는 않되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지원이나 투자도 없을 것임을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월 장관은 지난 주 럼스펠드 장관이 불참한 부시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 같은 접근방식에 대한 최종 재가를 받았다.
정보 관계자들은 “국방부측이 이라크 문제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파월장관이 북핵문제에 대한 입지를 굳힌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주도권을 놓고 양측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파문은 북한 지도부의 신경을 건드릴 것으로 보여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 북한 중국의 3자 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