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검은 비닐봉지로 그린 첩첩산중 岩山

박병춘 '비닐산수'

‘산수화(山水畵)’라 하면 준법과 먹의 농담으로 펼쳐놓은 담백한 장면, 기상과 정취를 펼쳐놓은 일련의 익숙한 그림이 떠오른다. 화가 박병춘은 그런 제약이 싫었다. 본래 전통 한국화는 시점이나 크기ㆍ배열을 자유롭게 바꿔가며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이면을 그려내는 무한한 상상력이 기본이니 말이다. 그는 수묵을 전제로 하되 먹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고무판을 가늘게 잘라 먹필처럼 배열한 ‘고무산수’, 칠판에 그렸다 지우면서 무소유를 상징한 ‘분필산수’, 구불구불 일렁이는 산수화의 필선을 라면으로 대체해 입체작품으로 선보인 ‘라면산수’까지 지난 10년간 그는 현대적인 산수풍경의 파격을 선보였다.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박병춘의 개인전 ‘산수컬렉션’. 이번에는 ‘비닐산수’다. 시장통 한구석에 둘둘 뭉친 채 쌓여있는 검정 비닐봉지 더미에서 화가는 먹보다 더 검은빛의 힘을 발견했다. 2층 전시장의 절반은 시커먼 비닐 봉지로 채워졌다. 작가는 봉지를 다듬어 힘찬 암산의 첩첩산중을 이끌어냈다. 2006년에 다녀온 인도의 산을 떠올리며. 굽이치는 검은 산 위에 작고 빨간 소형 경비행기도 매달았다. “시장통에 버려져 있던 풍경이죠. 일회용 비닐봉지의 재창조로 자연에 대한 경각심, 현대의 물질문명을 좀 꼬집어 보고 싶었고요.” 전시장 1층에는 폭포가 쏟아지는 초현실적인 공간이 꾸며졌다. 높이 7m, 폭 4mㆍ6m의 3개 벽면에 나무판을 붙이고 먹으로 산수를 그렸다. 정선과 영월의 절벽이다. 그리고 천장에서 7m 짜리 흰 면천을 떨어뜨려 곧고 힘찬 물줄기를 재현했다. 겸재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가 떠오른다. 자연의 위대함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산수 풍경에서 작가가 히말라야 트래킹 중에 만났다는 거대한 폭포가 ‘소리없는 굉음’을 들려온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다양한 산수회화도 만날 수 있으며 여행 중에 모은 다양한 돌에도 그린 작은 풍경도 선보인다. 박 화백은 직접 눈으로 본 장면, 사진이 아닌 손으로 스케치한 풍경만을 작품에 담는 고집쟁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풍경도 채집할 겸 중학생 아들, 아내와 함께 1년간 30개국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현재 덕성여대에 재직 중이다. 전시는 12월3일까지. (02)736-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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