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개성상인 개성공단

정보산업부장 박민수 minsoo@sed.co.kr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공단이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지난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이 개성공단 개발에 전격 합의한 후 4년4개월 만에 어렵사리 걸음마를 뗀 것이다. 개성공단의 성공적 출발은 3중고 4중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비상탈출구일 뿐 아니라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통일 기반 조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대북 역점사업의 하나로 구상해온 서해안공단개발계획이 구체화된 것이다. 고 정 명예회장이 98년 12월과 99년 2월 두 차례 방북, 북한에 800만평 규모의 서해안공단개발계획을 제시하고 북한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논의가 시작됐다. 공단후보지 선정과정에서 현대는 당초 남측의 근접성, 육로수송 가능성, 전력공급 등 제반 여건을 고려, 해주를 제안했지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 정 명예회장과의 면담에서 신의주를 제시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개성공단 조성에 따른 남한경제에 대한 직접효과는 1단계 조성이 완료되는 4년차에는 연간 생산 9조4,000억원, 연간 부가가치 2조7,000억원, 일자리 1만3,000개가 창출된다. 3단계 공단 조성이 모두 완료되는 9년차에는 연간 생산 83조9,000억원, 연간 부가가치 24조4,000억원, 일자리 10만개 창출이라는 천문학적인 경제효과를 거둘 것으로 분석됐다. 또 북한경제에 대한 직접 효과 또한 1단계 4년차에는 연간 임금수입 6,000만달러, 일자리 8만4,000개 창출, 3단계 완성시에는 임금과 기업소득세를 포함한 연간 총 수입이 6억달러에 이르고 일자리는 무려 73만개가 창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엄청난 경제적 가치에다 정치적인 의미까지 지닌 개성공단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과 북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어디서 어떻게 공급할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초기 시범단지에서 일하게 될 북한 노동자들은 아마 개성을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 주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로부터 이 지역의 상인들을 개성상인, 흔히 송도상인, 송상이라 불렀다. 개성상인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들의 근면절약 정신과 독특한 상관습에 대해서는 암묵적인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도 개성상인에 대해 고려조와 조선왕조를 통해 고도의 상술로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했던 상인의 무리로 규정했다. 아울러 이들을 기회포착이 빠르고 신용을 중시하며 대단히 근면하고 검약한 사람들로 평가했다. 이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개성상인의 정신 가운데는 주목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이들은 한가지 업종을 선택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용은 지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비록 신분의 저 끝자락에 위치한 상민 계급이었지만 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무장돼 있었다는 점은 수백년이 흐른 지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성공단이 본격 궤도에 올라서면 이곳에서는 더욱 많은 개성상인의 후예들이 여러 직종의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할 것이다. 개성상인의 상혼과 지혜를 물려받은 북한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만든 물건은 남한뿐 아니라 전세계로 팔려나가 수출한국의 신화를 다시 창조할 것으로 믿는다. 개성공단은 단순히 남과 북의 이해관계에 의해 물건만 만들어 파는 공업단지가 아니다. 한민족이면서도 60년간 분단된 채 첨예하게 대립해온 이념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이다.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조화를 이룰 때 개성공단은 남북 화합의 발판으로, 그리고 미래의 통일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