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루빈 지음, 현실문화 펴냄)=성(性)을 사유할 때가 왔다. 당장 당신의 머리 속엔 무엇이 떠오르는가. 남녀의 육체가 뒤엉켜 나뒹구는 침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관음증을 유발하는 이성(異性)의 사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섹슈얼리티 담론’은 여전히 사회 주변부에 밀려나 있다. 사도마조히즘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돼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세상이지만, 성 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억압과 폭력을 논의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인류학적 접근과 이해를 시도하는 움직임은 ‘하찮은’ 무엇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급진적인 성 이론으로 주류 페미니즘에서조차 비난의 대상인 저자는 성을 사유하고 또 사유함으로써 다양한 성이 어떻게 단일하고 단정한 하나의 성으로 구성되는지에 집중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성애는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강제적 장치를 통해 자연인 것처럼 만들어진 정치적 발명품이다. 이성애만이 옳다는 관념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는 끊임없이 성적 일탈을 처벌하고 범죄·병리화하며 ‘성적 하층민’을 생산해왔다. 샌프란시스코 남성 동성애자 사도마조히즘 집단인 ‘가죽족’, 사도마조히즘과 주먹 성교의 성지 ‘카타콤’, 포르노그래피와 레즈비언… 책은 논문과 참여관찰을 통해 누구도 다루지 못한 성적 일탈의 세계를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철저한 현장 연구로 완성된 글들은 단순히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저자가 꿈꾸는 해방의 공동체요 자유로운 인간들의 교류, 인간적인 성적 일탈의 세계로 연결된다. 모든 섹슈얼리티의 절대적 자유를 옹호하는 책의 급진적인 입장과 분석이 다소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껏 세상의 시선과 부담 탓에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성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사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만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