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마트폰 역성장과 쇠락 일로를 걷는 PC 시장 등 악재가 겹치면서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공급 과잉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메모리 업계를 과점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하반기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잇따른 증설 계획을 내놓는 반도체 업계가 '공급 과잉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지속적 가격 하락세를 보인 양대 메모리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는 낙폭이 더욱 심화하는 모양새다.
9일 반도체 업계와 가격조사기관인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DDR3 4GB)과 서버용 D램(DDR3 4GB) 가격은 지난달에 전달 대비 7~8%나 떨어졌다.
8월 하순(15~31일) 낸드(MLC 64Gb) 가격도 상순보다 6~7%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낸드는 최근 3개월 새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에 따르면 올 6월 37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며 32개월 만에 역성장했던 세계 메모리 시장 규모는 7월 33억5,000만달러로 또다시 떨어진 상태다.
반도체 업계는 전통적인 PC 시장의 하향세에 겹쳐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수요가 예상보다 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인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역성장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중국의 2·4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하며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집계한 바 있다. 진성혜 KTB 투자증권 연구원은 "업체들은 PC D램의 수익성 악화로 서버·모바일용 D램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들 분야의 수요도 예상을 밑돌고 있고 낸드도 공급은 느는 반면 수요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메모리 업계 하반기 실적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시장에서는 3·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지난 분기(3조4,000억원)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SK하이닉스도 1조3,000억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년 분기 대비 소폭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다.
업계에서는 전통적인 하반기 성수기 효과가 사라지고 내년 1·4분기까지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줄지은 추가 설비투자로 이 같은 현상이 장기간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1단계에만 사업비 15조6,000억원을 들여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이천 M14 라인에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최첨단 20나노 D램을 양산할 예정이다. 낸드 분야에서도 10나노급 미세공정과 3차원(3D) 낸드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도시바·마이크론이 치열한 기술 경쟁을 펼치며 공격적인 가격 인하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삼성만이 낸드 전제품을 10나노급 및 3D 형태로 양산해왔지만 올 4·4분기에는 낸드 공급업체들의 10나노대 양산 비중이 80%에 달한다는 게 D램익스체인지의 전망이다.
다만 하루가 다르게 시황이 변동하는 반도체 업계 특성상 2, 3년 후의 수급 상황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설명도 많다. 박유악 메리츠종합금융 연구원은 "삼성 평택 단지의 경우 아직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현재 이어지는 투자 증설을 2, 3년 후 공급 과잉과 연결짓기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