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문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들어서 있는 중개업소에는 버티컬블라인드가 허리 높이까지 내려와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통유리가 설치돼 있어 평소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굳이 내부 상황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증은 인근 중개업소에서 풀렸다. 이 지역 H공인 관계자는 "계약서를 쓸 때 집주인의 얼굴을 다른 중개업소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며 "손님을 뺏기지 않으려는 일종의 경영전략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거래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오랜만에 일손이 바빠진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들 사이에 치열한 고객 확보전이 펼쳐지고 있다. 집주인들이 여러 곳의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놓다 보니 계약 사실이 경쟁 업소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중개업소들이 버티컬블라인드를 사용해 업소 내부를 가리는 등 막상 계약 체결 때는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실제로 매도인이 특정 중개업소에서 계약하는 모습이 눈에 띄면 경쟁 중개업소는 '더 비싸게 사겠다는 매수자가 있다'는 식으로 연락을 취해 계약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계약 시점에 비해 잔금 시점에 집값이 오른 경우 "손해 보고 팔았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개포동 B공인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거래가 줄어들다 보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이라며 "대단지 중개업소에는 나름 친목회라는 모임이 존재하는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쟁터와 같다"고 전했다.
특히 대단지 아파트 인근일수록 여러 중개업소가 밀집돼 있는 경우가 많아 버티컬블라인드가 인테리어 필수품목인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 엘스·리센츠·파크리오, 도곡 렉슬, 반포 래미안퍼티지·자이 등 서울의 대표적인 대단지 아파트에서 이 같은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또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경우 정책 변수나 시장 상황에 따라 시세가 크게 변하는 경우가 많아 계약 시점과 잔금 시점 사이의 집값 차이를 두고 중개수수료를 더 못 받게 하려는 '꼼수'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원동 Y공인 관계자는 "오픈 상가인데 창문이 없어 버티컬 설치를 할 수 없으면 보안차원에서 계약서를 현지 부동산에서 쓰지 않고 매도인 집이나 카페 등에서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