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진출기업 지원에 해외 자원개발 사업까지 진출<br>수출입·시중銀등 고유영토 넘보며 "신규시장 개척" <br>일부 "정체성 버리고 만만한 곳서 활로찾아" 우려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건물 |
|
▦국제투자은행으로 도약 ▦해외자원 개발 진출 ▦북한 진출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
이들 주제는 그동안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의 고유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슬로건들은 최근 산업은행이 내건 주요사업목표다. 그것도 김창록 총재가 깊은 관심을 갖고 밀어부치는 새로운 산업은행의 사업과제들이다.
물론 산업은행으로선 새로운 금융시장 영역이지만 수출입은행과 일반 시중은행들로선 그동안 해왔던 사업이어서 산은의 신규영역 진출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산업은행의 이 같은 변신은 개발금융 지원이라는 정체성의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터에 금융연구원이 감사원의 요구로 국책은행 통합 과제에 관한 용역작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산업은행이 개척하려는 부문이 기존 국책은행과 중첩되고 시중은행의 영역으로 민영화해야 할 영역이어서 그 의도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산업은행의 해외시장 개척은 지난 5월 김 총재가 중국을 방문, 이른바 ‘베이징 구상’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산업은행의 해외 자원개발 지원 계획은 김 총재의 ‘베이징 구상’에서 비롯됐다. 베이징 구상은 자원ㆍ에너지 확보를 위한 해외진출 국내 기업을 지원한다는 것. 또 아시아ㆍ동유럽 등 신흥시장 개척과 주요 지역별 거점 점포 육성을 통해 해외 업무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업무 추진 전략이다.
8일 산업은행은 한국석유공사와 해외 석유사업 지원 개발을 위한 포괄적 업무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산은은 아예 올해 2월 출범한 ‘에너지산업 해외진출 협의회’에 6월 중 가입, 해외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자문 주선 업무 및 진출업체에 대한 금융지원을 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은 또 대북사업 지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4월 북한 진출 기업에 대해 동일인 여신한도 폐지 및 시설자금 대출비율 상향 조정 등 여신 지침을 개정했다. 9일에는 김 총재가 직접 나서 “북한진출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해 개성공단 본단지 입주 업체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산은이 몇 개월 사이에 굵직한 프로젝트를 발표하자 수출입은행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신동규 행장은 9일 경영전략회의에서 “최근 산업은행이 해외투자ㆍ자원개발ㆍ선박금융ㆍ플랜트는 물론 남북 경협기금까지 넘보는 등 ‘올 코트 프레싱’으로 수출입은행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해외자원개발과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은 수출입은행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들이다.
수출입은행은 2005년 한해 동안에 해외 자원개발과 수입자금으로 1조7,600억원을 지원했다. 해외진출 기업에 대한 지원도 지난해 1조3,490억원을 기록했다. 남북경협자금을 활용, 북한 진출 국내기업에 대한 지원도 정부가 인정한 수출입은행의 독자적인 영역이다.
수출입은행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해외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수출입은행과 산은이 이중으로 국내 기업을 지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대우증권 등 굵직한 자회사 인수와 회사채 시장을 독식, 민간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산업은행이 3개 국책은행의 기능 재정립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가장 ‘만만한’ 곳으로 활로를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최근 의욕적인 행보와는 관계없이 정체성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달 말 금융연구원이 산업은행의 진로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