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급짜리 하수들의 행마 같은 무식하고 각박한 수순이 다시 펼쳐졌다. 구리는 살기등등하게 덮치고 또 덮쳤다. 그러나 이창호의 대마는 포위망을 부드럽게 벗어났다. 우상귀 방면의 전투에서 백이 난관을 헤쳐나온 것처럼 이번에도 난관을 무사히 돌파했다. 원래는 상당히 거대했던 우하귀의 흑진이 반으로 쭈그러들었다. 그렇다면 백이 형세를 만회한 것일까.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적진 돌파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신에 흑에게 두터움을 제공했으니까요.”(윤성현) “여전히 흑의 우세란 말인가?”(필자) “반면으로 10집쯤 흑이 앞서 있어요.”(윤성현) “백이 성공한 결과인 줄 알았는데….”(필자) “실패는 아니지요. 흑진을 대폭 줄였으니까요.”(윤성현) “이창호의 타개 솜씨가 멋지긴 멋졌지? 끊을 테면 끊으라고 하면서 32로 올라선 수는 깊은 수읽기의 산물이었지?”(필자) 구리가 흑33으로 자중한 것은 당연했다. 참고도1의 흑1로 끊으면 하변의 백을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백2 이하 8의 수순으로 더 큰 흑대마가 잡혀 버린다. 당연해 보이는 실전의 진행이었는데 윤성현은 놀라운 가상도 하나를 소개했다. 흑이 아무런 희생도 없이 하변의 백대마를 잡는 귀수(鬼手)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참고도2의 흑1로 먼저 치중하여 백8까지를 응수시켜 놓고 9로 끊었으면 백의 파탄이었다. 흑25가 선수로 들으므로 중앙의 흑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리가 그 귀수를 놓쳤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