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항! 한국號 어디로] 엑소더스 기업, 국민
"입시지옥 교육·불안한 직장에 넌더리" 국민10중 7명 "이민준비·의사있다" 기업도 규제·노사문제 피해 해외이전 일자리 감소→실업→경기침체 되풀이
외국인 직접투자 4년연속 감소
외국기업인 시각 "한국인 자신감 가져야"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민영씨(42). 그는 최근 이민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사오정’, ‘오륙도’ 등의 얘기가 나돌면서 직장생활이 불안하고,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 아들의 교육비를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 씨는 “국내 일류대학을 졸업해도 해외파에게 밀리는 게 현실”이라며 “차라리 미국에서 조그만 가게라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살고, 아이들을 현지 대학에 보내는 훨씬 낫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과 기업들이 고향을 등지고 있다.
국민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인 사교육비 등의 이유로, 기업들은 ▦매년 반복되는 노사분규 ▦불합리한 규제 등으로 한국을 떠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회원 6,0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 같은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응답자의 73.9%가 이민을 준비하거나, 갈 의사가 있다고 말한 것. 실제 해외 이주자는 지난 2002년 1만1,275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1만3,389명으로 2,000명 이상 늘었다.
기업의 탈(脫)코리아 현상도 심각하다. 최근 2~3년간 기업들은 속속 한국을 떠나 중국, 베트남 등으로 이전했다. 최근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39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이상이 5년 이내에 해외로 옮기겠다고 대답해 기업들의 해외진출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된다.
◇ 왜 등을 돌리는가 = 국민들이 이민을 원하는 이유로 ▦자녀교육 ▦실업 및 경제난 ▦불안정한 정치ㆍ경제 ▦노후대책 미비 등을 주로 꼽고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고비용 저효율’로 압축된다. 국내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공교육비의 수십~수백 배에 달하는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게 현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GDP의 3%에 달해 OECD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외국 연수, 유학비용도 만만치 않다. 유학ㆍ연수 지수는 매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0억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02년 14억1,000만 달러, 2003년 18억4,000만 달러로 매년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청년 실업률의 증가도 이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부모들은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해내고, 자녀들은 ‘입시지옥’을 통과해 대학을 졸업해도 돈 한푼 못 버는 실업자로 전락하는 현실 앞에 나라에 대한 애정은 점차 식을 수 밖에 없다.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대립적인 노사관계’와 ‘불합리한 규제’로 집약된다.
올 하반기 중국으로 제조시설을 이전하는 플라스틱 용기 제조사 H사의 K사장은 “국내에 공장을 지으려면 규제법령이 수 십 개에 달하고 관련 공무원들 눈치도 봐야 한다”면서 “하지만 중국은 각종 지원과 혜택을 보장하고,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서니 누구라도 한국 보다 중국에 공장을 짓고 싶어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 대한민국 공동화 우려 = 탈코리아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부에서는 ‘대한민국 공동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지난 2002년 세계 주요 58개국의 두뇌잔류지수(우수 인력의 자국 잔류 경향을 환산한 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4.6으로 40위에 그쳤다. 이 지수는 0~10까지이며, 0에 가까울수록 고급 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한국은 지난 92년 두뇌유출지수가 7.3으로 당시 37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6위였다. 10년 만에 지수가 2.7포인트나 떨어지며 34계단이나 추락한 것이다.
기업의 해외진출은 국내 일자리 축소로 직결된다. 삼성그룹의 경우 현재 중국 현지에 5만여명에 달하는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고, LG전자 역시 3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을 채용하고 있다. 두 기업만 해도 벌써 8만 명에 달하는 일자리가 빠져나간 것이다.
지난 2002년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총 1,800건으로 지난 94년보다 1.8배나 늘었다. 반면 지난해 제조업분야의 일자리 수는 416만개로 90년에 비해 88만개나 줄었다. 결국 기업의 해외이전-> 국내일자리 부족 -> 청년실업 악화 -> 소비 및 경기침체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 역시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전년에 비해 29%나 줄었다. 이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가장 많았던 99년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 기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국내외 우수인력과 기업의 탈코리아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노사분규, 규제개혁, 정치안정 등이 선행되어야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기업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4-05-30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