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열린 원자력 관련 토론회에 다녀왔다. 큰 틀의 주제는 한국 원자력산업의 발전인 것 같았는데 실제의 목적은 ‘원자력 안전 분야의 행정구조를 어떻게 재설정할 것인가’였다.
우리나라의 전문지식인들, 특히 정치권과의 소통을 넓히려는 분들은 항상 문제 해결의 초점을 조직의 재정립과 같은 임시변통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원자력산업의 부흥, 원전의 안전한 운영, 그리고 나아가 신성장동력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원자력산업의 수출을 위해 지난날의 공보다는 과를 더 뉘우치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원자력계가 다뤄야 할 문제다.
전문지식인의 본분에 맞게 전문적인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신뢰를 차근차근 높여왔다면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정부부처 간 이기주의 또는 정부조직의 불합리성이 원자력발전과 국제 핵프로그램의 신인도에 걸림돌이 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토론회에서도 십수번이나 ‘미국은’이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은 경제와 과학 분야에서 선진국이고 원자력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미국 사람이 아니듯 우리나라 원자력기술 현황과 정치적 주변여건 또한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원자력산업을 시작한 30여년 전과 지금은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지난 30여년간을 미국의 통제 아래에서, 더욱이 충실한 미국 원자력산업체의 시장을 자처한 우리에게 무슨 어려움이 더 있겠는가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지만 연합국들에 정치적 명분을 제시하고 에너지 자립과 수출의 실리를 찾고자 지난 1955년부터 1962년까지 원자력부(Atomministerium)를 설립해 국제사회에 독일 원자력산업의 등장을 알렸다. 물론 원자력부 설립 초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원자력계와 적지 않은 갈등도 빚었지만 독일은 그들만의 ‘특별한 길(Sonderweg)’ ‘존더백’을 통해 원자력산업의 국내 중흥과 해외 원전 수출이라는 실리도 얻었다.
정부가 원자력 수출을 포함한 ‘녹색성장’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원자력의 안전 규제와 인ㆍ허가 분야에서도 대한민국만의 ‘특별한 길(Sonderweg)’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독일의 경우 원자력 안전과 규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인ㆍ허가를 담당하는 대부분이 민간조직으로 독과점 방지에 따라 경쟁관계에 있어 공공의 확고한 신뢰를 받고 있기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유럽산업체요구사항(EUR)을 만족시키는 데 앞장서 우리나라 원전플랜트 수출의 지원자와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산업을 영유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 중 우리나라처럼 원자력 분야에서 순혈주의와 지연을 넘어 학연으로까지 뭉친 나라는 없다. 정부가 원자력산업을 신성장동력의 수출산업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목적을 등한시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를 반복하는 관련 연구기관의 조직과 기능을 목적에 맞게 재편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계획된 몇 개의 과제를 수행했다는 항변을 들어주기보다는 연구결과물의 검증을 통해 연구원과 연구기관이 검증받을 수 있도록 원자력계의 변화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도전과 응전의 원칙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조용한 외교’라는 원칙으로 국제사회의 모범생임을 자처해온 대한민국이 과연 원자력 수출을 포함한 ‘녹색성장’을 어떻게 일궈낼지 심히 걱정이 앞선다.
필자의 의견이 원자력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과 원자력 분야 전문지식인들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국제관계와 산업체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원자력산업의 발전과 수출산업화를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밝혀둔다.
참고로 독일의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은 물리학을 전공하고 원자력 안전에도 상당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간단없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