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칠레産의 추억

소비자들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익크기가 같다고 가정하면 손실로 인한 아픔 강도가 이익으로 보는 기쁨보다 크다. 가령 A쇼핑몰에서 파는 상품은'주중에 싸다'보다 '주말에 비싸다'는 평판이 소비자들을 더 자극한다. 이 같은 손실회피 경향은 상품을 고르는 데도 기준이 된다. 턱없이 비싼 재료를 사용하거나 수입품이 관세가 높다면 다른 상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지난 2004년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발효 이후 칠레산 와인의 국내 수입규모가 발효 전보다 9배나 늘어난 것도 같은 이치다. 단순히 와인이 좋아 마시는 소비자들에게 유럽산과 칠레산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매년 관세가 조금씩이나마 줄어드는 칠레산 와인은 그렇지 않은 유럽산 와인과 비교해 관세로 인한 손실을 회피하려는 욕구를 제대로 자극했다. 이렇게 칠레산은 반사효과를 톡톡히 봤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큰 만족을 얻지는 못했다. 관세인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칠레산 와인은 지난 8년 동안 단 한 종류도 FTA발효 전보다 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다. 수입업체나 와인소매점들은 값이 싸졌다는 막연한 기대심리를 십분 이용해 가격 조정을 하지 않았고 몬테스알파 등 몇몇 와인들은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수입단가 상승과 환율변동으로 밑지고 팔 수야 없지 않느냐는 수입ㆍ판매업체들의 항변을 반박할 근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당장 한ㆍ유럽연합(EU) FTA가 잠정 발효되는 다음 달부터 소비자들은 '칠레산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야 할 판이다. 유럽산 와인, 명품백 관세가 인하되고 없어져도 현지 제조사들이 다시 가격을 올리고 수입상들과 유통업체들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관세 폭만큼 가격을 조정할 의지가 없는 한 말이다. FTA를 한국 제품의 유럽수출에만 의미를 둘 수는 없다. 교역과 투자확대는 물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효과도 크다. 소비자들은 거창한 거시 경제적 의미보다 유럽산 상품을 싸게 살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도 뒤통수 맞은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해 2,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입와인과 수조원에 달하는 명품백ㆍ의류 시장에서 한국 소비자들이 왜 유독 푸대접을 받는지를 따져보면 이유는 자명하다. '제멋대로 가격 인상'에 내심 불쾌해도 군말 없이 항상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현명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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