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실채권 처리기구 만들자/정기영 삼성금융연 소장(서경논단)

올해들어 한보, 삼미, 기아 등 대기업군에 속하는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부도유예협약에 따라 부도유예조치를 받았다. 이들 기업이 은행 또는 제2금융권 등으로부터 빌려 쓴 자금의 규모는 약 40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은행은 적게는 몇 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2조원에 이르는 새로운 부실채권을 안게 되었고 종금사, 리스사, 보험사 등 대부분의 제2금융권 금융기관도 몇 천억원대에 이르는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었다. 지금 정부나 언론 및 국민들은 한보, 진로, 기아 등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방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자구노력이나 구조조정방안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부실기업으로 인해 거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금융기관들의 도산우려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은행이 도산하게 되면 이는 곧 국내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지고 국가경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은행의 도산을 막기 위해 부실규모가 큰 은행에 한은 특별융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은특융에는 엄청난 특혜성으로 인해 은행간·금융권간의 형평성 문제 야기,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에서 보조금지원 금지로 인한 통상마찰 우려성, 은행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문제 등 많은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은행 발권력으로 부실은행의 도산을 막아주기 때문에 부실은행이 한은특융을 갚지 못하는 경우에 이는 결국 국민에게 조세부담을 주거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한은특융은 금융기관의 도산 및 국가경제의 위기를 막는 최후 수단이지 함부로 남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부도유예 처분을 받은 부실기업이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하듯이 부실금융기관도 보유 부동산 및 자회사 매각, 해외점포 정리 및 해외자산 매각, 인원감축 등을 통해 획기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80년대 중반 중남미 채무불이행사태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을 때 샌프란시스코 소재 본점건물까지 매각하면서 자구노력을 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도 수수방관하지 말고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과감히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대출채권 유동화 제도를 도입하여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채권가격의 20% 또는 30% 등 저렴한 가격으로 타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가 또는 정부 설립 「부실채권처리기관」(가칭)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부실채권처리기관」(가칭)을 설립하고, 이 기관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채권을 부분적 또는 일괄매입하여 장기적으로 처리하도록 한다. 또한 정부는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자구노력을 할 때 조세감면 등 새제혜택을 부여하는 방안도 강구해야한다. 부채­주식 전환제도(Debt­Equity Swap)의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대출을 해당기업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제도로서 금융기관이 대출채권 대신 부실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게 되고 부실기업의 경영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실기업이 회복하게 되었을 때 보유주식에 대한 투자를 회수할 수 있게 된다. 한보사태에서 기아사태에 이르기까지 은행, 제2금융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거의 그로기상태에 빠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금융기관이나 정부는 시장윤리에 입각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즉 금융기관 스스로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극복할 방안을 강구하고 정부는 이와 같이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약력 ▲54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대 상대, 미버클리대(경영학박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대통령 경제비서실 파견근무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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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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