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조피디의 Cinessay] '로마의 휴일'

궁으로 돌아간 앤 공주는 행복했을까?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던, 그러나 선택하고 싶었던 그 길을 갔더라면 지금 나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휴가철이라 <로마의 휴일>(1953년작)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엉뚱하게도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마지막에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죠(그레고리 펙)와 결혼을 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해외여행을 꿈꾸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나에게 '로마'는 로망이었다. 오드리 헵번이 스쿠터를 질주하던 도로, 배경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던 콜로세움, 그녀가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귀엽게 웃음 짓던 미장원, 젤라또를 소녀처럼 먹던 스페인 광장의 계단, 죠의 장난에 화들짝 놀라던 '진실의 입', 로마 시민들이 여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던 노상 카페마저도 멋져 보였다. 영화 한 편이 갖는 도시 홍보 효과는 앞으로도 <로마의 휴일>을 따라올 작품이 없을 것 같다.

볼거리만 화려한 게 아니다. 오드리 헵번은 지금 그 어느 톱 여배우보다 세련되고 매력적이고 우아하고 귀엽다. 전 세계에 헵번 스타일을 유행시킬 만큼 여자들이 더 좋아하는 여자이기도 하고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받는 삶을 살았다.


그레고리 펙은 또 어떤가. 능글맞으면서도 인간적이고 기품있고 의젓한 그야말로 '신사'의 전형이다. 기자로서 특종 중의 특종을 잡았지만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궁전을 외롭게 빠져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그레고리 펙이었기에 여운과 무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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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설명이 필요없는 윌리엄 와일러다. 내용도 탄탄하다. 꽉 짜인 일상에 지친 앤 공주의 1박2일 탈출기지만, 그 안에 코메디·로맨스·인간애·정치성까지 두루 갖췄다.

명대사도 많다. 앤 공주는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어." 일탈을 하지만 "삶이란 것이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궁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앤에게 죠는 "애쓰지 말라"고 다독인다. 공주로서의 책임감을 질책하는 신하에게 "조국에 대한 책임감을 잊었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갈하기도 한다.

즐겁게 보면 그만일 영화도 나이 탓인지 자꾸 현실과 오버랩을 시킨다. 우리도 특히, 여행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영화처럼 대단한 로맨스나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 내가 잘살고 있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는지, 더 늦기 전에 내면이 강렬히 원하는 가지 않았던 길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하지만 우리도 대부분 현실로 돌아온다. 책임 있는 가장·사회인·가족의 모습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용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앤 공주는 그 이후 행복했을까?

조휴정(KBS1 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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