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 소리로 초상집에 가서 그 사람 왜 죽었냐고 물으면 숨을 못 쉬어 죽었지 하곤 한다. 호흡하고 있으면 고귀한 사람이지만 호흡이 끊어지면 사람취급 못 받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렇다고 호흡만 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호흡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수영강습을 다닌 적이 있는데 한달 남짓한 기간만에 나보다 잘하게 되었다. 중학교때 큰소리 치며 한강을 건너다 장마로 불어난 물살에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지만 그래도 수영이라면 곧잘 한다고 자부하던 나는 오기가 나서 정식으로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그때 코치의 말이 수영은 호흡이니 호흡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는 것이다.
비단 수영만이 아니다. 마라톤도 호흡이고 사격도 호흡이다. 그런데 운동마다 같은 호흡이 아니라 특유의 호흡이 존재한다. 대중가요의 호흡과 찬송가의 호흡 역시 다르다. 대중가요 부를 때의 호흡으로 찬송가를 부른다면 은혜가 없고, 찬송가 호흡으로 대중가요를 부른다면 전혀 재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코드가 맞다`는 말도 호흡이 맞다는 말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의 호흡은 기업인의 그것과 분명히 달라야 한다.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호흡은 자기 희생이다. 스스로 손해보지 않고서는 진정 남을 섬길 수 없다. 기업인의 호흡은 이윤추구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것인가에 따라 호흡의 장단고저가 달라진다. 이런 기업인의 호흡으로 공직을 수행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모든 일에 동일한 호흡도 있다. 사랑과 열정이 그것이다. 사랑하면 상대가 못생기고 눈꼽이 끼어있어도 마냥 아름답게만 보인다. 모든 것을 다 바칠 열정이 생겨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바다에 미래가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자기의 일을 사랑하고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한다. 주인이고 중심인 우리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호흡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요 과정이지만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 자체가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게 된다. 주어진 소명에 맞는 호흡, 사랑의 호흡을 하다보면 어느새 원하던 것이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흔히 `될대로 되라`고 번역하는 `캐세라세라`(que sera sera)가 실은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을 호흡하며 내일을 준비하면 된다. 제대로 호흡하다 보면 다 잘될 것이다. 돈이나 지위는 아닐지 몰라도 더 가치있는 무엇을 갖게 될 것이다.
<최낙정(해양수산부 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