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18일] '특검스럽다'

삼성 특검의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삼성의 의혹이 처음부터 아무런 근거 없이 과장된 채로 폭로됐거나 아니면 특검이 봐준 것이다.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100여일 동안 수사했지만 특검이 새롭게 밝혀낸 게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주식 정도다. 선대로 물려받은 돈을 숨기고 전ㆍ현직 임직원 명의로 차명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도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추가로 기소했지만 지금까지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나온 것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 의혹이던 비자금 조성 의혹, 조성된 비자금으로 해외 고가 미술품을 구입한 의혹, 정ㆍ관ㆍ법조계 로비의혹 등은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 말은 곧 김용철(전 삼성 법무팀장) 변호사가 지난해 말 “삼성이 계열사를 동원해 수조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오너 가족들이 고가미술품을 구입하는 데 썼다”는 애초 폭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후자의 봐주기 수사의 경우다. 수사 초기 이 회장 집무실이나 삼성본관 등을 압수수색 하는 등 강한 의욕을 보였지만 사실 건진 게 별로 없다. 일부에서 쇼에 불과했다고 비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 중반부터는 아예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삼성의 조직적 은폐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는 특검팀의 하소연에 국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수십억원의 혈세를 쓰고 에이스들만으로 구성된 특검이 한 기업의 방해 때문에 수사를 할 수 없다니. 스스로가 무능하다고 발표한 것이고 결국 부실수사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가는 꼴이 돼버린 것이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정 당국이 100여일씩 수사하고도 의혹을 밝히지 못하고 조직적 은폐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나. 총선 이후 신조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동해스럽다(자기 딸을 나리들이 취중에 보듬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를 일컬음)’ ‘동작스럽다(부자가 자기들을 잘살게 해줄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일컬음)’ 등등. 삼성 특검 이후에는 ‘특검스럽다(쓸모없는 에너지만 낭비하고 거액의 혈세만 날린 꼴)’는 말이 유행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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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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