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물가'서 '경기'로 정책 선회

■ 한국은행 기준금리 0.25%P 인하<br>세계 각국 일제 금리인하 촉매제 역할


한국은행이 9일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춘 이유는 고물가보다 경기하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은이 존재하는 목적이 우선 물가인 것은 맞지만 이보다는 현재의 경기상황을 방치할 경우 꼼짝없이 ‘디프레션(depressionㆍ불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날 밤 7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동반 인하한 것은 한은의 금리결정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주요국과 우리의 금리차가 확대된 터라 금리를 내려도 외국인의 자본이탈 가능성이 크지 않아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세계적인 금리인하 추세가 지속될 경우 우리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루 만에 동결에서 인하로…긴박했던 15시간=금융통화위원회 하루 전인 지난 8일만 해도 한은의 금리 스탠스는 ‘동결’이었다. 한은 안팎에 따르면 8일 오전 한은 집행부의 동향 보고회의와 오후7인 금통위원만의 회의 때 다소 이견은 있었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는 ‘금리동결’이었다. 금리에 대한 최종 결정은 금통위 본회의에서 정해지지만 통상 전일 금통위원 간 의견조율이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10월 한은 기준금리는 사실상 동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8시를 넘겨 주요국 중앙은행이 동시에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하했다는 소식이 타전되면서 상황은 급작스럽게 변했다. 이달 간사인 박봉흠 금통위원을 중심으로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전화통화로 ‘주요국이 동반 금리인하에 나섰는데 우리도 금리동결을 재고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이뤄졌고 이는 이성태 한은 총재에게까지 전해져 9일 다시 금리정책을 결정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금통위는 9일 오전9시 공식 회의를 시작, 금리를 내릴지, 동결할지, 내린다면 0.25%포인트만 내릴지, 기왕에 0.5%포인트를 한꺼번에 내릴지를 격론한 끝에 오전11시10분쯤 ‘25bp 금리인하’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통상 회의시간이 1시간 남짓, 길어야 1시간20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 2시간을 훌쩍 넘긴 것은 정답 도출에 상당한 진통이 뒤따랐음을 짐작케 한다. ◇한은, 왜 금리 전격 인하했나=시장 관계자들은 8일까지도 금리동결을 예상했다. 경기침체가 우려되지만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5%대이고 금리를 올린 지 두달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한은도 전달 금리를 바꿀 것이라는 시그널을 내보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금리를 낮출 경우 외국인의 자본이탈을 자극해 환율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금리동결에 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동반 인하하면서 우리의 금리정책도 변화가 생겼다. 우선 발등의 불인 환율 불안 부담을 덜게 됐다.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0.5%포인트 내렸기 때문에 우리가 0.25%포인트를 내려도 금리격차에 따른 외국인의 자금이탈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 이 총재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여건까지 포함했을 때 한은의 금리인하가 외환시장에 추가적인 불안으로 작용할 요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파르게 추락하는 경기도 고려됐다. 한은은 “경기가 내수부진으로 둔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으며 세계경기 위축 등으로 향후 성장의 하향 리스크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금리인하는 국제적인 금리인하 공조체제에 참여하는 한편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은=한은이 물가에서 경기 쪽으로 통화정책을 선회했다는 점에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게 관측된다. 경기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는데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앞으로 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이 총재도 추가 인하 가능성을 몇 차례나 강하게 내비쳤다. 이 총재는 0.25%포인트 인하의 효용성을 묻는 질문에 “금리변동이라는 것은 한번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에 있을 수 있어 누적 또는 중기로 보면 인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추가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그는 “외환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통화정책의 큰 짐을 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물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환율이 안정세를 되찾으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분위기가 경기 살리기로 전환된데다 유동성 해소가 전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주요국이 추가 금리인하 추세로 간다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뒤따라 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연내 추가 금리인하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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