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일로서 고속도로를 달릴라치면 마주 오던 차가 라이트를 깜박거려 주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의 전방에 교통순경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였다. 그 때만해도 과속 등 교통법규를 어겼다가 적발되면 얼마간의 돈을 집어주고 해결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었고 그 같은 부수입을 노리고 몫 좋은 곳을 지키는 경찰관도 없지 않았다. 라이트 신호는 말하자면 그 같은 온당치 못한 단속의 피해자들이 이심전심으로 서로 정보를 교환함으로서 피해를 막아 보려는 공동방어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낙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는 그 같은 풍속이 사라진 것은 무인카메라가 등장하고부터 인 듯 싶다. 정밀한 기계가 잡아 놓은 영상과 데이터 앞에서는 타협과 거래의 여지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피해의식이나 동류의식도 있을 수 없을 터이다. 그런데 그 무인카메라의 40%이상이 껍데기만 흉내 낸 가짜라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한다. 무인 카메라가 작동중이라고 믿고 조심운전을 해온 시민들이 이제까지 속아 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도로공사측은 "무인 카메라가 실물이던 모형이던 과속을 못하게 하는 경고기능이 있다"며 앞으로 경찰 당국과 협의해서 모형카메라를 더 늘려나갈 방침임을 당당히 밝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도로공사 측의 얘기대로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목적이 과속을 막자는 데 있는 만큼 진짜이던 가짜이던 그 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그만 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카메라가 설치 된 지점만 지나면 다시 과속을 하는 차량들이 많은 만큼 카메라를 더 많이 설치해야 하는데 필요한 재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형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좋다 하더라도 정부와 그 감독을 받는 산하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얄팍한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나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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