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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틀에 갇혀 변화 거부 … 판박이 영업 그쳐
우수한 인력 활용 차별화된 사업 모델 찾아야
해외 투자 과세 역차별 개선에도 적극 나설 것
인터넷銀 진입 개방위해 국회 금산분리 완화 절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자기 평가는 짰다. 취임 이후 혼신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는 '금융 개혁'과 관련,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점수를 줄 만한 수준이 안된다"고 혹평했다. 금융회사 검사·제재 개편부터 핀테크 활성화, 기술금융 개편, 그림자 규제 개혁, 인터넷은행 도입 방안까지. 쉼 없이 개혁 과제를 쏟아냈지만 금융 현장의 변화는 더뎌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아직도 과거의 틀에 안주하는 모습이 적지 않다고 금융 업계를 비판했다. 그는 "현장에 나가보면 우리 금융 인력의 우수성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라며 "문제는 정해진 틀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천편일률적인 영업 형태, 그에 따른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은 바로 미진한 금융 개혁의 증표라는 설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통해 자신만의 비기를 가다듬는 금융회사가 많이 나와야 희망이 있다는 뜻을 전했다. 임 위원장은 "금융 개혁의 최종 목표는 은행과 제2금융권·자본시장 등이 각자 나름의 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며 "금융 당국도 규제 개혁 등을 통해 금융산업의 질적 도약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실물 지원 위한 자본시장 개혁=임 위원장이 하반기 가장 신경 쓰는 부문은 금융의 실물경제 지원이다. 그의 눈이 자본시장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 위원장은 "실물경제의 혈맥인 금융의 역할을 고려할 때 자본시장이 우리 금융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증시를 통해 창업 자금을 조달하고 이후 기업 성장과 회수 단계에서도 자본시장이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아직은 너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코스닥 시장의 분리도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임 위원장은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코스닥 시장이 고유의 정체성을 갖기 힘들다"면서 "거래소 내 별도 자회사를 두든 지주회사 형식으로 개편하든 시장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식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닥 시장이 차별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 세제 개혁도 신경 쓰고 있다. 저금리 시대 자산 증식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기반 확충에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투자 대상이 같은 데도 불구하고 과세에서 차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며 해외 주식에 간접 투자하는 펀드를 예로 들었다. 그는 "현재 펀드를 통한 해외 투자시 배당소득세(15.4%)를 내야 하고 종합소득과세도 적용되지만 해외 직접 투자의 경우는 분리과세돼 (간접 투자가) 불리한 부분이 많다"고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인터넷은행 등 혁신 통해 산업 경쟁력 제고=금융업의 최대 화두는 핀테크다. 금융과 정보기술(IT) 등 이종업체의 결합으로 금융의 경계는 이미 흐릿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은행은 핀테크 활성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하다. 임 위원장은 예의 '메기론'을 연상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인터넷 전문은행을 도입하는 이유는 과점적 양상을 보이는 은행의 영업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조에 '미꾸라지(금융회사)'만 바글대면 미꾸라지는 활력을 잃지만 천적인 '메기(이종업체)'를 풀면 미꾸라지도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다음카카오 등 전자통신기술(ICT)기업뿐만 아니라 유통·통신 등 대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은산분리 완화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국회의원들도 인터넷은행의 도입 취지를 백분 이해할 것"이라며 "금융 개혁 차원의 큰 틀에서 봐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당장 현행 은행법 테두리 내에서 출범하는 인터넷은행들의 서비스를 봐도 적어도 인터넷은행에서 만큼은 '기업의 사금고화' 우려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규제 개혁이 금융 개혁의 절반. 체제 틀 바꾸겠다=임 위원장은 "규제개혁은 전체 금융 개혁 작업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봤다. 금융 개혁에는 규제 개혁이 필수라는 얘기다. 가령 사전규제를 줄이고 사후 관리를 강화하면 금융인의 마인드도 보다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되고' 식의 자기검열이 줄어 개혁 가능성이 커진다. 임 위원장도 이런 맥락에서 "규제 개혁을 통해 금융업권이 보다 빨리 바뀔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장과의 소통에 힘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임 위원장은 "문견이정(聞見而定·보고 듣고 난 뒤에 방침을 정하다)하겠다"며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반쪽자리 금융 개혁으로 전락할 수 있는 만큼 현장 친화적 개혁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