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과 조달청의 행정편의주의로 판로확보가 절실한 중소기업들이 공공구매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16일 중소업계에 따르면 공공구매 과정에서 입찰공고안의 제품규격에 업체명과 모델명을 못박아 중소업체들의 입찰참여가 원천봉쇄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또 모델명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특정 모델만 통과할 수 있는 규격을 입찰공고에 명기, 사실상 특정 기업의 제품을 지정 구매하는 '꼼수'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 두달간 서울경제신문이 국가전자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의 입찰공고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행ㆍ한국산업은행ㆍ국민체육진흥공단ㆍ천안시 등 다양한 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이 같은 공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일례로 지난달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국가전자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 올린 통신망 연결장비 구매 입찰공고의 경우 시스코ㆍ카탈리스트시스템 등 글로벌네트워크 장비업체의 모델명이 규격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국산 장비업체들은 애초에 참여할 수조차 없는 규격이 제시된 셈이다.
조달행정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홈페이지 및 시스템 구축, 디자인 작업 등 지식기반 용역 분야에서는 불합리한 서류제출 요구로 중소기업들이 "진입장벽이 높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공공기관 수주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게는 수백 쪽에 달해 서류작성 전문인력이 없는 영세한 업체들은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서류에는 자료입력비ㆍ인쇄비 등 세세한 항목 기입을 요구하거나 물품을 납품하는 제조업체에나 해당될 만한 항목을 제시해 업체들 사이에서는 발주기관의 지식기반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한 디자인 업체 관계자는 "무형제품을 만드는 지식기반산업은 인건비를 제외하면 다른 비용이 거의 들지 않지만 잉크 값, 전기료 등까지 쥐어짜 재료비 항목을 채웠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꽉 막힌 조달행정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민간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목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소기업옴부즈만실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과다한 서류 요구, 까다로운 현장점검, 심사지연 등에 대해 중소기업계에서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하반기 중점 규제개선 과제로 삼고 관련기관과 실무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