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업 "리스크 심사 너무 획일적"…은행선 "경영부실 전가 변명"


“은행들이 산업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기업 여신정책을 펴고 있어요. 한마디로 산업을 너무 모릅니다.”(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기업들의 자금조달 고충은 이해합니다만 국민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손실 없이 운용해야 하는 은행으로선 리스크가 높은 기업들까지 감싸 않을 수 안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임창섭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최근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여부를 둘러싼 현대그룹과 외환은행간 갈등이 부각되면서 은행의 기업금융서비스가 적정한 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 붙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표적이 된 해운ㆍ조선ㆍ건설업 등의 분야에선 “은행들이 경제 호황기일 때에는 돈을 써달라고 애원하다가 정작 업황이 나빠지면 나 몰라라 식으로 발을 뺀다”는 볼멘 소리가 그치질 않고 있다. 한마디로 은행들의 기업여신 정책이 구태의연한 보신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구조조정 대상에 몰린 기업 경영인들이 경영 오판에 따른 책임과 부실을 은행에 떠넘기려는 변명에 불과하다며 맞불을 지르는 형국이다.


◇은행 리스크 심사는 획일적(?)=산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은행들의 획일적인 여신 심사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배 본부장은 “은행들은 각 기업들의 특성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무조건 부채비율과 같은 일반적인 기준만으로 여신심사를 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연봉 60억원을 받는 사람을 20억원의 마이너스 대출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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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진 업황의 변동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 관계자들이 특히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보유 선박수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되는 해운사들은 척당 수천억원대 안팎의 선박을 대량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금융권에서 차입금이 늘어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업 자산이 늘어나는 동시에 부채가 늘어나는 셈이다. 해운사들은 이렇게 빌린 돈을 길게는 20년에 걸쳐 장기 상환한다. 따라서 기존 재무상태만을 기준으로 삼아 해운사들의 건전성을 평가한다면 은행으로선 해당 기업의 여신을 회수하거나 신규 대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상시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은행이 해운사별 중장기 경영실적을 예측할 수 있는 분석 능력과 데이터를 갖췄다면 당장은 불량 기업으로 보이는 고객 중에서도 우량고객을 발굴해 자금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등이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해운기업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기준을 개선해달라고 건의서를 보낸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아울러 사업 초기에 토지나 설비 확보를 위해 큰 몫돈이 들어가는 건설, 조선 분야 기업들도 은행들이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위기 등이 닥치면 무자비한 자금회수에 들어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금융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각 은행들이 산업분야별로 전문화된 여신심사 인력과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업역별 특성에 맞는 대출서비스를 원활히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시중은행의 리스크담당 임원은 “주요 은행들은 건설, 해운, 반도체 등 각종 산업분야별로 전문화된 심사역을 두고 있다”며 “어지간한 은행들은 모두 산업분석팀이나 산업조사팀 등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주요 업종별 업황과 기업 현황 등을 분석해 자료를 수시고 제공하고 있으며 이것이 은행의 여신심사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또한 경영난에 몰린 일부 기업들이 자신들의 경영 실수를 은행의 탓으로 돌리는 떼법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흙 속 진주 캘 대안책 마련해야=하지만 은행권 내에서도 기업 여신심사체계의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형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행들이 과거의 기업실적이나 신용평가자료에만 얽매여 대출 고객의 미래 우량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은행의 경쟁력이란 남들이 다 외면하는 고객중에서도 우량 고객을 발굴할 수 있는 차별화된 분석능력인 데 국내 은행들이 이 같은 능력을 쌓는 데 게을리 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기존의 여신심사 잣대로는 비우량고객으로 분류되는 기업 중에서도 미래 성장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면 우량 은행 고객이 될 수 있는 ‘진흙 속 진주’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은행의 여신서비스가 커버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한 자금조달은 메자닌 펀드나 에쿼티펀드와 같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형 금융상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되고 있다. 임창섭 부회장은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최근 녹색산업분야의 자금 지원을 위해 1,100억원 정도로 구성한 메자닌 펀드나 국민연금이 참여해 마련되 3,400억원 규모의 메자닌 펀드 등은 은행들에서 돈 가뭄을 해소하지 못한 기업들에게 좋은 창구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형 기자 kmh20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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