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명품에 멍드는 대한민국


'9개.' 성인 1명당 명품 보유 개수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매년 2개씩 명품을 사는데 271만원 정도를 지출한단다. 뿐이랴. 불황에도 초고가 브랜드는 해마다 6~13% 늘어난다. 대한민국은 가히 명품 천국이다.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명품에 매달리는가. 과시를 통한 차별화 때문이 아닐까.


△미국 제도경제학파의 창시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은 1899년 펴낸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철도 투기와 주식 시세 조종으로 거금을 모은 굴드ㆍ밴더빌트가 활개 치던 시절, 베블런은 이 책을 통해 졸부들의 사치를 태초부터 이어져온 강자의 자기 과시 행위와 동일하다고 봤다. 부자의 금고에 가득한 돈은 원시부족이 확보한 타부족 머리가죽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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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소비의 사회(1970년)'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드(1929~2007)는 현대인의 소비를 '사회의 계급 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못박았다. 상품의 기능을 보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상품이 상징하는 권위를 구매해 사회적 계급 질서, 즉 차별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명품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의 감춰진 얼굴일지도 모른다.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을 둘러싼 '소비자들의 좌절과 의욕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문제는 정도와 범위다. 1989년 과소비가 사회문제로 대두됐을 때 일본 산케이신문 쿠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은 '부유층의 과소비는 어느 나라든 존재하지만 온 국민이 과소비하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기사를 날렸었다. 요즘은 더 심각하다. 명품을 살 돈이 없다고 명품 포장지와 종이백, 심지어 리본 끈까지 수만원을 주고 구입하는 세상이다. 강남과 수도권 일대 백화점과 아웃렛을 돌며 명품 의류와 가방 39점을 훔친 30대 중반의 절도범은 명품을 방에 놔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근검과 절약을 강조하는 유교 자본주의를 벗어난 한국의 미래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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