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에 다리가 좀 후들거려서 고생했지만 톱 10에 들어서 내년에도 올 수 있게 돼 기뻐요. 안젤라와 동반하면서 마음이 편했던 덕분인 것 같아요.” “16, 17번홀 연속으로 보기를 했을 때 지애가 옆에서 ‘파이팅’하면서 힘을 줘서 마지막 홀에 버디를 낚을 수 있었어요.” 2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 파인스의 파인니들스 골프장(파72ㆍ6,616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경기인 US여자오픈(총상금 310만달러)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불어 온 한국인 골퍼 바람이 세계 무대에 폭풍으로 몰아칠 것임을 새삼 증명한 경기였다. 열아홉 동갑내기로 최종라운드 동반 플레이를 하면서 친구가 된 신지애(하이마트)와 안젤라 박이 대표적인 케이스. 태어난 곳도, 활동하는 곳, 주로 사용하는 말도 다르지만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큰 힘이 됐다며 서로에게 공을 돌렸던 그들은 경기 내내 우승 가시권을 맴돌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촘촘히 앞뒤 팀을 이뤄 라운드했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웃으며 손 흔들고 ‘잘해라’, ‘파이팅’ 한마디씩 던졌던 한국말이 힘이 돼 리더보드 상단에 태극기가 물결 쳤다. 브라질 국적의 안젤라 박이 3언더파 공동2위, 박세리(30ㆍCJ)와 재미교포 박인비(19)가 2언더파 공동 4위, 신지애(19ㆍ하이마트) 이븐파 단독 6위, 이지영(22ㆍ하이마트) 1오버파 단독 7위, 김미현(30ㆍKTF)과 장정(27ㆍ기업은행)이 2오버파 공동 8위, 배경은(22ㆍCJ) 3오버파 공동 10위 등으로 10위내에 한국인 선수가 8명이나 됐다. 신예부터 중견, 미국진출 1세대인 큰 언니들까지 연령대가 고른 것이 눈길을 끌었다. 최우수 아마추어도 한국인의 몫이었다. 한국 국가대표 주장인 송민영(18ㆍ대전국제고)과 미국 아마추어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제니 리(19)가 나란히 10오버파 294타로 공동 39위에 올라 아마추어 골퍼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초반부터 저력을 과시한 것은 ‘동생’들이었다. 안젤라 박은 16, 17번홀 연속 보기가 아쉬웠지만 공동 2위에 랭크돼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공동 5위에 이어 메이저 경기 2개 연속 ‘톱5’에 들었다. 신인왕 수상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는 것이 현지 반응이다. 국내 대회 3개 연속 우승기록을 세운 뒤 미국에 간 신지애는 체력 부담 탓인지 최종일 보기만 3개 했으나 드라이브샷 비거리 9위(259.25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공동 3위(82%), 그린 적중률 공동 8위(68%), 퍼팅 수 39위(1.69개) 등 각 분야에서 고른 실력을 과시, ‘토종 골프’의 매운 맛을 보였다. 막판 뒷심을 보인 것은 노련미 넘치는 ‘언니’들이었다. 10대 신예들에는 우상인 박세리가 17, 18번홀 연속 버디로 3언더파를 기록, 2언더파 공동 4위까지 순위를 끌어 올렸다. 전날도 마지막 홀 버디를 곁들여 3언더파를 쳤던 박세리는 “어려운 코스에서 3, 4라운드 연속 언더파를 쳐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미현도 이날 1타를 줄인 덕에 공동 8위로 올라섰다. 한편 현지에서 플레이를 지켜 본 관계자들은 “미국 곳곳은 물론 호주나 유럽에서 골프를 익힌 한국인들이 더 많이 LPGA무대에 몰려들 것”이라며 “국적은 달라도 한국계가 리더보드 윗자리를 모두 휩쓰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