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스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지난 여름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가을 단풍으로 한바탕 축제를 끝내고 조용히 떠난 숲에 며칠 전 겨울비가 내렸다. 어둑어둑 저녁 기운이 일주문을 지나 삼각산으로 올라올 때 나는 겨울비에 촉촉하게 젖어가는 도량을 걷고 있었다. 고요한 소요의 삼매를 즐기고 있을 때 한 불자께서 걸음을 멈추고 갑작스럽게 "스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왔다. 순간 스승님이 "너는 누구냐?"하고 벼락이 치듯이 할(선원에서 위엄있게 꾸짖는 소리.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없는 도리를 나타내 보일 때 이 소리를 해 배우는 이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을 하시는 것 같았다. 어찌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웃으면서 합장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그 질문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던진 화두(話頭)가 돼 내 마음을 붙들었다. 종교·계급·빈부 구별 없어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기, 화계사는 해마다 이웃 종교인 천주교ㆍ기독교 선우들과 함께 바자회를 개최한다. 올해도 지난달 한신대 운동장에서 수유1동 성당과 송암교회 그리고 화계사가 화합ㆍ사랑ㆍ가르침의 실천 나누기 바자회를 개최했다. 바자회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선우들은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협력하고 노력하며 자비와 사랑을 실천한다. 종교인들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자기 종교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자기 선행도 겸손으로 비웠다. 이렇게 사랑이란 사랑하는 한 생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몸의 실천이라고 생각해본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와 풀 그리고 바위와 흙들이 모이고 어울려서 큰 산을 이뤄내고 지켜나간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몇 송이의 장미나 백합이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꽃들과 풀들이다. 많은 종교인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종교 간의 작은 공동선을 지향하는 활동들도 점점 번져나가 온 세상을 따뜻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실천들이 사랑이다. 사랑의 실천에는 종교ㆍ계급ㆍ빈부의 구별도, 나와 너의 구분도 없다. 그리고 사랑의 결과는 화합과 공생으로 이어진다. 화계사 숲에 어둠이 깊어가고 경내에 조그마한 등불이 켜진다. 조금은 어둡지만 밝다. 쓸쓸하지만 따뜻하다. 우리들도 모두 자신의 마음 속에 사랑이라는 등불을 켜자. 자비라는 등불을 켜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때 어둡고 혼탁한 세상은 더욱 밝고 따뜻해질 것이다. 온 세상의 생명들은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바르게 있게 될 것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는 부모처럼, 나를 에워싸고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너희들에게로 온전한 사랑과 자비를 함께 실천하자. 그러면 우리들은 수많은 예수와 부처의 발현으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색깔로 밝혀진 각자의 등불이 조화를 이뤄 세상에 더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로 빛나기를 서원(誓願)한다. 이웃을 가족과 같이 대하는 연말 되길 사찰 밖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가로수마다 예수 성탄을 축하하는 불빛이 빛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스물 다섯째 날은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났지만 고난 속에 살면서도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또 한 분의 위대한 성자인 아기 예수 탄생일이다. 우리 모두 축복하고 축복받는 날이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 사랑이라는 화두를 들기에는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사랑이라는 한 가지 생각으로 충만하고 이 생각을 실천하자. 우리 모두 세상의 모든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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