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장 기능·질서 무너뜨린다

정부·정치권 票의식한 친서민·상생정책 입법 잇달아<br>전세상한제·이자제한법 등<br>오히려 서민들만 멍들수도


정부와 정치권이 친서민, 대중소기업 상생 등 정책개발 경쟁에 적극 나서면서 시장경제 질서를 왜곡하는 반(反)시장적 입법이 넘쳐나고 있다. 친서민 등 분명한 명분을 가지고 추진되는 입법은 인기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정치권에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실제 시장기능만 마비시키고 서민들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책과 입법도 적지 않아 정부와 정치권의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 선악(善惡)의 개념을 씌우는 정책은 정교한 메스가 아닌 뭉툭한 망치가 돼 시장을 망가뜨릴 수 있다. 집은 '주거복지'를 이유로 정치권과 정부가 대표적으로 건드리는 분야다. 현재 전월세 대란의 해법으로 등장하는 전세상한제와 계약갱신권은 민주당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할 만큼 환영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가격조정을 막을 수 있다. 각종 세금이나 규제 등으로 수익이 나지 않아 공급이 부족한 시장에 가격상한제까지 적용한다면 공급은 더더욱 줄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 부문이 수익성을 포기하고 국민 세금으로 집을 공급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갱신제청구권으로는 전세가가 뛰는 주기만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될 것이고 청구권 역시 현재 전월세 등기가 제대로 안 돼 가격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면계약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대부업자 이자제한법은 비정상에 가까운 이자를 낮추자는 목적이지만 아예 서민층의 돈줄 자체를 막을 수 있다. 이 법을 발의한 조문환 한나라당 의원조차 "일본에서 대부업자의 이자를 30%에서 20%로 낮추자마자 대부업자 자체가 크게 줄어들어 저신용층의 대출이 축소됐다"면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보다 대부업계의 자금조달 금리가 20%포인트나 높은 상황을 그대로 둔 채 당장 이자만 줄인다면 대부업체를 음성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자 서민들의 기름값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일방적인 '업계 쥐어짜기'도 시장원리를 훼손한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고민하는 동시에 정유사에는 담합을 했는지 장부를 들춰보겠다며 압박한다. 지난 1997년 전까지 해도 기름값은 정부가 복잡한 가격결정 공식에 형식적으로 업계 의견을 반영하는 정부주도 방식으로 산정됐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가격자유화가 이뤄진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기름값 산정에 관치가 작용하는 셈이다. 더구나 시장경제 원리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기업 원가공개를 정유업계에 의무화한다면 몰라도 그런 제도적 장치도 없이는 정유사에 대한 정부의 여론재판식 압박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관련 정책이나 입법도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무리수를 둘 경우 시장에 주름살을 지게 할 수 있다. 강자와 약자의 논리로만 볼 경우 대기업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취급하는 여론몰이에 편승하는 사례도 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가 추진하는 징벌적 손배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했을 경우 손해액의 3배를 물어주는 내용이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일부 변호사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승소할 경우 '로또 당첨효과'를 볼 수 있어 전문 소송꾼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를 따르지 않고 각 정권이 지역에 지은 공항은 13개 가운데 제주ㆍ인천ㆍ김해공항을 제외한 10개가 적자다. 동남권 신공항 역시 애초에 노무현 정부가 경제적 효과보다 표를 좇아 약속했고 이를 이어받았던 이명박 정부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반면 기업 구조조정을 강제해 기업 회생 가능성을 높이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처리는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물 건너갔다. 여야 의원들이 시급하지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또 저축은행 부실사태 해법으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예금자보호법도 마찬가지다. 금융권이 공동계정을 만들어 저축은행에 투입하자는 이 법안은 공동계정에 들어갈 자금을 감시할 수 없고 원인제공자를 불분명하게 한다는 야당의 반론을 설득하지 못해 무산될 상황이다. 경제학자 출신인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은"정부가 시장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장에 위배되는 포퓰리즘은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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