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고비 넘겼다" "아직 낙관은 일러" 팽팽<br>긍정론 리보·CP금리 하락세… "美·유럽등 대응 효과 신호"<br>신중론 은행간 대출등 활기 못찾아 "완화 기대하기엔 무리"
| 21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증시는 경기 침체 우려와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 발표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기준금리인 리보(LIBOR)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 수준으로 급락해 신용경색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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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각국이 숨가쁘게 강도높은 대응책을 토해냈다. 유로권 국가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 아래 은행 국유화 등의 공조안을 내놨다.
유로권의 금융위기 공동대응을 진두지휘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금융위기에 맞서기 위한 유로권의 경제정부를 설립하자"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간접적인 시장 개입방식을 고집하던 미국도 결국 유럽식 구제금융안을 따르기로 결단을 내리고 총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 중 우선 2,500억 달러로 은행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각 은행에 "돈을 쌓아두지 말고 대출을 하라"고 떠밀었다. 이밖에도 미국과 유럽 각국은 달러 무제한 공급도 약속했다.
이 같은 조치가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일까. 국제 자금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리보(LIBORㆍ런던 은행 간 금리) 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3개월물 달러리보금리는 지난주부터 7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21일 4%이하(3.83375%)로 내려갔다. 같은 날 하루짜리 달러 리보 금리도 1.28125%로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3개월물 유리보(유럽은행간금리) 역시 4.95875%로 전날보다 0.035%포인트 낮아졌다.
▲ 자금시장 풀린다? YES
극도의 신뢰붕괴 속에서 딱딱하게 경직됐던 자금시장이 각국의 강제 순환시스템에 힘입어 다시 풀리기 시작하나.
리보금리는 기업 및 금융회사의 해외조달금리의 기준이 된다. 리보가 내려가면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기업이나 일반인들이 상대적으로 대출을 받기 쉬워진다. 결국 대출 활성화와 이로 인한 신용경색 해소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리보금리가 5일째 연속 하락한 지난 17일 JP모건과 씨티그룹은 3~4.5%의 금리로 단기자금을 기업에 대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금융회사가 대출한 자금 규모는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많지 않은 금액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2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도 트레이더들이 '신용경색의 중대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조5,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기업어음(CP) 시장도 숨통이 트이는 모양새다. 하루짜리 무보증 CP금리는 지난 17일 1% 이하로 떨어졌으며, 30년 무보증CP의 평균 금리도 1.43%까지 낮아졌다.
로이터통신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오는 27일 신용 수준이 높은 기업의 CP를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곧 시작할 것이므로 앞으로 CP 금리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CP는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 수단으로 주로 이용된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은행의 워런 호건 애널리스트는 "각국 정부의 은행 지분 매입 조치 등이 자금시장에서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리보금리가 낮아지면서 리보금리와 미 국채수익률 간 격차를 나타내는 TED스프레드도 20일 3.15%를 기록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TED스프레드는 높을수록 자금시장의 위험도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미 대형 은행들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스프레드 역시 하락해 시장에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모건스탠리ㆍ씨티그룹ㆍ메릴린치의 CDS스프레드는 지난주 4일 연속 떨어지면서 9개월만에 최대 하락폭을 보였다. CDS스프레드는 낮을수록 해당 기업의 부도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 자금시장 풀린다? NOT YET
단기적인 변화만으로 성급히 추세를 낙관하기는 시기상조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높다.
리보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정한 기준금리보다는 월등히 높다. 리보금리는 미국 등 선진국의 기준금리 변화와 연동해 움직이는 게 보통이다.
현재 미국과 유로권의 기준금리는 각각 1.5%, 3.75%지만, 리보금리의 기준인 3개월물 달러리보금리는 지난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부터 언제 어느 은행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탓에 2.8%대에서 4.8%까지 급격히 상승했었다.
TED스프레드 역시 리보금리를 따라 다소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20일 3.20%를 기록, 여전히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는 상태다. 2007년 초 TED스프레드는 0.2%에 불과했다.
리보금리는 떨어졌지만 시중은행간 대출이 활기를 되찾은 것은 아니다. 지난 17일 유로권 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신청한 하루짜리 단기대출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2,396억 유로(3,172억 미국 달러)였다.
16일에는 ECB의 기준금리인 3.75%보다 더 높은 4.25%의 금리에도 불구하고 130억 유로(172억 달러) 규모의 ECB 하루짜리 긴급대출이 이뤄졌다. 평상시처럼 은행간 자금유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은행이 섣불리 자금을 공급할 대상을 찾기도 쉽지 않아(투자 리스크가 높아) 자금시장 경색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현재 시장의 디폴트 위험지수는 15.4%로 1920년대 대공황 수준이다.
코메르츠방크의 피터 딕슨 애널리스트는 "이웃 은행이 망할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행이 돈을 풀어도 될 만큼 시장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체감온도는 아직 영하권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현재 라이벌기업인 크라이슬러와 합병작업을 진행중이지만 해고근로자 퇴직금 등의 자금이 모자라 난항을 겪고 있다. IBM도 이달 초 8%에 달하는 고금리로 간신히 40억 달러 어치의 채권을 발행했다.
현재로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상태의 지속이다.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밀러&태벅의 토니 크레센치 수석 채권시장 전략가는 "유로권 중앙은행 등이 달러를 무제한 공급키로 한 만큼 리보금리는 앞으로도 더 내려갈 것"이라면서도 "투자자들이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는 2~3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