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복지 포퓰리즘 재정부실 현실화] 지자체 복지비가 예산의 무려 61%… 상반기중 곳간 바닥난다

무상보육 일방 추진… 막대한 부담 떠넘겨 치솟는 비용 감당못해<br>"지출 증가분 보전하라" 지자체들 목소리 커져<br>"재정 방만운용 해놓고…" 중앙정부는 쓴소리

서울시내의 한 보육시설에서 어린이들이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다. 무리한 복지 포퓰리즘 탓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보육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보육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전국 시도지사들은 정부가 국고보조를 늘리지 않으면 무상보육을 보이콧하겠다는 성명서를 29일 발표할 계획이다. 서울경제DB


전국 16개 시도지사들이 영유아 무상보육에 대한 잠정 보이콧(거부) 카드까지 추진하는 것은 국회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위기를 방관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복지 포퓰리즘'이 재정 부실화의 모습으로 현실화한 첫 사례라는 점이다.

시도지사들은 이미 지난 2월 성명서를 통해 국회와 정부가 무상보육 확대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막대한 재정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겼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그러나 뾰족한 지원대책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구체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가야겠다며 벼르게 된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이르면 한두 달, 늦어도 상반기 내에 복지예산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재정고갈을 겪는 지자체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걱정한다. 김성호 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지자체들의 재정상황을 보니 당장 4~5월이 살얼음판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지자체들이 다른 예산을 줄이는 방식으로 근근이 복지예산을 충당해왔는데 올 들어 무상보육사업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자체들이 보이콧을 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돈이 없어 무상보육사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는 뜻이다.

사실 정부도 지자체의 어려운 살림살이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복지사업을 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씩 나눠 내는 매칭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지자체들의 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비 부담이 전국 평균 20.2%까지 증가했다"며 "자치구 평균치는 무려 43.5%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일반행정이나 국토개발 등의 다른 사업예산 비중이 대체로 10%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복지 사업비 증가는 매우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며 "사업비 분담 수준을 지자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율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부산 북구의 경우 사회복지사업비가 한해 예산의 무려 61%에 달할 정도인데 이는 전국의 자치구 중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꼽힌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사회복지사업비 예산 비중이 30.4%에 이르러 전국 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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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자체들의 복지비 부담이 커진 데 대해 이재은 경기대 부총장은 "정부가 참여정부 시절부터 각종 복지사업 등을 지자체 사업으로 떠넘기면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 정부 들어서도 각종 국고보조사업을 확대 추진하면서 (매칭 방식에 따라) 관련 지자체들이 보태야 하는 예산 부담도 함께 늘면서 재정난이 가속화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참여정부 이후 정부가 지자체로 위임한 복지사업의 규모는 67개에 달하는데 이로 인해 지난 10년간 전국 지자체의 복지사업비 부담은 연평균 25%대에 육박했다는 게 지자체들의 분석이다. 그에 비해 정부의 국고보조 확대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뎠다.

정부가 주요 복지사업을 지자체로 떠넘기면서 재원으로 쓰라고 신설한 것이 분권 교부세인데 그 규모가 내국세(관세를 제외한 국세) 수입액의 0.94%로 고정돼 있다 보니 치솟는 복지사업 비용을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보다 안정적인 세원을 지자체로 추가 이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소한 복지 지출 증가분만큼의 재정수입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견해는 다르다. 이미 주민세나 재산세ㆍ취득세를 비롯해 상당한 세원이 지방세로 확보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자체에 따라 재정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무턱대고 세원을 넘겨줬다가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지자체들이 각종 지방세수와 정부 예산 지원을 끌어다놓고 도청ㆍ시청 건물을 호화판으로 지어 낭비한다든지, 지역 표심을 사려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개발사업을 방만하게 벌여 스스로 자기 재정을 축낸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책임공방에만 매달리기에는 지자체가 처한 재정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지자체의 재정부담이 가중되는 각종 국책ㆍ복지사업 등을 추진할 때는 국회와 정부가 지자체들과 사전에 정밀한 정책협의를 벌여 서로 재정부담이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를 내야 한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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