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 연휴를 바로 앞둔 지난 5일 저녁.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서울의 한 호텔로 소수의 기자들을 불렀다. KB 사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자리여서 기자는 어느 때보다 긴장감과 함께 기대를 했다.
여러 질문 끝에 화제가 됐던 '템플스테이 잠자리 소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임 회장은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의 갈등을 촉발시킨 이 문제에 장황하게 딴소리를 이어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코 고는 사람들도 있고 숨이 멈추는 사람들도 있고, 산행하면서 누가 코를 골았느니 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저도 무호흡증이 있습니다. 그런 게 에피소드가 됐던 것 같습니다. 화합하는 자리였습니다."
듣고 싶었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일부 임원들의 과도한 의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내 불찰이다" 정도의 대답은 나올 줄 알았다.
지주 회장으로서 사태 이후 처음 전면에 나선 날 임 회장의 태도는 너무 방어적이었다.
측근들은 한술 더 떴다. 한 측근은 "민감한 얘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며 질문을 차단했다. 중징계 결정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까지 회장의 심기를 걱정하는 측근들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징계 사유와 관련, 임 회장의 당시 발언도 신빙성이 의심되는 부분들이 많다. 임 회장은 "은행 IT본부장으로 A씨를 직접 추천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고 IT 쪽 사람은 알지도 못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금감원 검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은행 IT본부장의 인사가 있기 직전 KB지주에서 A본부장의 인사기록을 국민은행보다 먼저 조회했다는 전산 기록이 나와 있다. 임 회장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지주 임직원들이 멋대로 은행 인사에 개입한 것이다. 차라리 임 회장이 "회장으로서 은행 본부장 하나 추천 못 하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면 되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임 회장이 주장하는 억울함에 동조하는 시각이 금융권에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당국이 '강압'과 '개입'이라고 밝혔던 부분들은 다른 금융사에서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하지만 임 회장은 KB 구성원들과 여론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5월 KB 사태가 터진 이후 넉 달이 넘도록 임 회장은 KB를 화합시키는 것보다는 자기방어에 치중했고 이 전 행장에게도 손을 내밀지 못했다. 300조원 자산과 2만5,000명 직원을 거느린 지주 회장으로서 본질적인 자질 문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그가 한 번이라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로 진실된 모습을 보였다면 명예는 남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