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보그룹/투박… 뚝심… 불가능을 가능으로(재벌)

◎허름한 아파트상가 3층 사옥서/재계순위 14위 “우뚝” 저돌성장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한보그룹에 입사한 김모씨(28)는 이 그룹과 인연을 맺으면서 크게 두번을 놀랐다. 첫번째는 입사원서를 내기위해 강남구 대치동 본사 사옥을 찾았을 때였다. 번듯한 건물이 여럿 있었지만 한보의 그룹사옥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보가 국내굴지의 재벌그룹(자산기준 14위)인 만큼 웅장한 사옥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지레 짐작으로 빌딩숲만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낸 그룹 사옥은 「꼬질 꼬질한」 은마아파트 상가 3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처에서 음식냄새가 나고, 인근의 태권도장에서 어린이들의 기합소리가 진동했다. 『솔직히 말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실망과 함께 국내 굴지의 기업이 왜 번듯한 자기 사옥 하나 갖고 있지 않은지 놀랍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놀란 것은 입사 이후였다. 한보가 초라한 사옥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을 정도로 저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확인했기 때문이다. 민간 최대의 제철소라는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8년간 추진해온 뚝심과 수조원을 쏟아붓는 배짱이 이런 곳에서 생겨났으리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이같은 놀라움은 신입사원들만의 느낌은 아니다. 한보그룹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최소 두번은 놀란다. 아파트상가에 본사를 둔 랭킹 14위의 재벌그룹(95년 5조1천4백70억원), 민간 최대의 제철소를 건설한 그룹 등 안팎으로 놀란다. 한보의 기업문화는 이처럼 극단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이런 이미지는 한보를 새로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지만 종종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한보를 둘러싼 「확인되지 않는 루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옥문제다. 『대치동 본사 사옥의 터가 풍수지리상 명당이기 때문에 한보가 번듯한 사옥을 지어 살림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한보측은 『터무니 없는 소리』라며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룹 비서실 관계자는 『당진제철소 같은 4조원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다보니 자기 집 지을 여유가 어디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보의 이미지는 투박함과 우직함으로 표현된다. 재계 서열 14위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으면서도 세련된 면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회사 씨름단 이름은 「멧돼지」다. 회사 이미지는 멧돼지 그 자체다. 사업구조만 해도 그렇다. 한보는 재계 상위권 기업중에 독특하게 소비재를 전혀 취급하지 않고 있는 그룹이다. 철강·건설·에너지(가스)로 이어지는 주력업종의 면면에서 나타나듯 한보는 기간산업에만 주력하는 우직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관계자들은 『일부에서는 「당진제철소에 투자한 4조원을 소비재에 투입했다면 벌써 본전은 건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단기보다 길게 승부를 하는 것이 한보의 경영원칙』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같은 투박함과 우직함외에 한보에는 「따뜻함」이 흐르고 있다. 사내 분위기부터 그렇다. 한보를 방문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가족적이라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상하간 또는 동료간의 정연한 위계질서속에서도 다른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곳곳에 배어있다. 이런 분위기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출근한 직원이 전부서에 떡을 돌리는 관행에서도 익히 엿볼 수 있다. 한보그룹에서 이직률은 매우 낮다. 수서사건과 노태우씨 비자금사건 등 두차례의 큰 위기를 맞았을때도 직원들의 동요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공기를 맞추기 위해 관리직 사원까지 현장에 자진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정태수총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에서 기인한 바 크다는게 그룹 직원들의 분석이다. 정 총회장은 웬만큼 큰 실수를 하기 전에는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을 절대 박절하게 내몰지 않는다. 그가 그룹훈으로 「인화」를 첫번째로 꼽은 것이나 최근 감량경영 바람이 휘몰아 치는 와중에서 『인위적인 인원감축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힌데서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주)한보가 국내 건설사로서는 처음으로 아파트에 노인정을 설치한 것이나 매년 추석을 앞두고 순직 사원들의 미망인들을 초청, 위로연을 베푸는 등 작은 면면에서도 한보만의 독특한 사풍이 엿보인다. 이런 훈훈한 사풍은 국내 기업중 유일하게 「평생 사원제」를 도입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평생사원제란 회사에 큰 공을 세운 사원을 선정, 퇴직후부터 사망때까지 매년 공로금 1억원을 지급하는 제도. 이미 6명이 선정돼 있고 이중 1명은 올해부터 수혜를 받고 있다. 인화경영의 가지는 2세 경영체제로까지 뻗치고 있다. 정총회장은 올해 3월 그룹을 분할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4명의 아들들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3남인 보근씨가 주력기업(건설·철강·에너지)을 맡고 장남인 종근씨가 목재그룹을, 2남인 원근씨가 제약 및 영상그룹, 막내인 한근씨가 그룹부회장을 맡도록 했다. 3남이 그룹회장을 맡는 경영이양이 이뤄졌음에도 다른 그룹에서 발견되는 형제간의 알력이나 다툼은 전혀 없다는 후문이다. 기간산업을 주축으로 하면서 우직하고도 투박한 모습을 보여온 한보는 글자그대로 멧돼지가 돌격하는 모습의 저돌성을 바탕으로 오는 2000년대에는 재계 10위권으로 진입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한보는 이같은 자신감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최근 창사 24년만에 처음으로 TV CF를 제작, 곧 선보일 예정이다. 『광고의 테마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보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누구나 두번은 놀라는 그룹. 한보가 세번째 놀라움을 줄 일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재계의 관심이 「은마아파트」로 쏠리고 있다. □한보의 상징 ◎평생사원제/“한번 한보인은 영원한 한보인”/유공사원 퇴직후 연 1억 지급 한보의 기업문화가 가장 잘 농축된 것을 꼽으라면 「평생사원제」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한번 한보 사람이면 퇴직 후에도 평생사원」이라는 것. 재직할 때 회사에 큰 공을 남긴 사원을 선정, 퇴직후 사망때까지 매년 1억원의 공로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현재 김종국 그룹재정본부 사장, 이용남 (주)한보 사장, 정일기 한보건설 사장, 조원제 한보엔지니어링 고문, 최기서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건설본부 사장, 홍태선 한보철강 사장 등 6명이 당진제철소 건설과 관련한 공로로 지난해 6월 평생사원으로 선정됐다. 이중 조원제고문은 지난 5월 퇴직과 함께 첫 수혜자가 됐다. 이 제도는 지난해 당진제철소 A지구 준공식에서 정태수총회장이 전격 발표하면서 도입됐다. 정총회장은 『독립운동가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말년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마찬가지로 회사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직원들도 퇴직후에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평생사원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평생사원제는 샐러리맨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한보그룹 젊은 직원들에게 평생직장으로서의 보람을 갖게하는 활력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보는 2세 경영체제를 맞아 직원들에게 보람있고 긍지있는 직장상을 심어주기 위해 평생사원제를 전직원에게 확대, 임원급이 아닌 일반사원도 공헌도가 뚜렷할 경우 평생사원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공격적 경영방식/상시채용·인재풀제 전격도입/전자메일시스템 등 한발 앞서 철강·건설·에너지 등 기간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한보그룹은 일면 투박하게 비춰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외로 앞서가는 기업임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메일 시스템. 이 시스템은 모든 결재나 공지를 컴퓨터를 통해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사무실에서 서류를 사라지게 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결재를 하면 대기시간이 거의 없는 리얼타임으로 업무 처리가 이뤄진다. 한보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앞선 점은 독특한 인재채용 제도다. 한보는 지난해 4월 국내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상시채용제를 도입, 새로운 채용 시스템 바람을 일으켰다. 이 제도는 1년에 1∼2차례로 제한돼 있는 입사 응시기회를 무제한 개방한 것으로 입사 희망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입사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한보는 상시채용제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해 인재풀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신설, 또 한차례 「채용형식 파괴」 바람을 일으켰다. 인재풀제란 상시채용제를 한단계 발전시킨 제도로 입사희망자들의 자료를 전산화해 필요한 시기, 필요한 부서에 배치하는 방식. 이에따라 입사 희망자들은 비록 원하는 시기에 입사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재차 입사기회를 가질 수 있다. 특히 군입대 문제나 고시공부 등으로 취업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한보가 처음 도입한 상시채용제와 인재풀 시스템은 현재 많은 기업들에 보급돼 시행중이며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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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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