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를 쇼핑하는 시대

해운산업의 초창기에는 자국에서 건조한 선박에 자국 선원을 태우고 자국의 국기를 다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이제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던 `자국`의 위상을 `국제경쟁력`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전쟁과 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편법적으로 행해졌던 선박의 제3국적 이전도 이제는 `편의치적`이라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원가절감을 위한 보편적 기법으로 변모하였다. 해운선사 또는 선주가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세금부담이나 규제가 거의 없는 국가에 선박을 등록하는 편의치적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국가마저 옮겨다닐 수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해운산업은 편의치적 외에도 선박금융, 조선, 선원고용에 이르기까지 조건만 맞으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는 철저한 국제분업이 보편화되어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의 추세속에 국적파괴현상은 비단 해운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은 자신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국가를 찾아 나서고, 국가는 고용 증대와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기업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고, 기업에게 매력없는 국가는 번영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요 준엄한 원칙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분명하다. 기업들의 마음에 쏙 드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기업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데에 있다. 절차는 복잡하고 규제는 도처에 널려 있으며 정치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강성노조와 집단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다고 한다. 법 위에 떼가 있고, 떼 위에 국민정서가 있다고 한다. 이런 나라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기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려면 무엇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한 넋두리라 할지라도 우리를 돌아보며 그릇된 관행과 폐습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외국인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투자하고픈 마음이 생기도록 다양한 인센티브와 기발한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일도 늦추어서는 안된다. 사람과 물건이 우리나라로 몰려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반대로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것이다. 국가를 쇼핑하는 시대에는 `기업의 구미에 맞는 국가`라는 상품을 내놓는 길밖에 없다. 팔리지 않아 재고 처분되면서 소비자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낙정(해양수산부 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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