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지나친 '목표지향 문화' 탓에 자살률 높아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살 문제는 지나친 목표지향적 문화가 주원인입니다. 자살 문제를 다루는 정책조차 자살률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는데 이제는 생각의 틀을 바꿀 때입니다."

이현정(41·사진)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비영리단체 자살예방행동포럼(LIFE)이 최근 서울 연세대에서 '무엇이 한국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를 주제로 연 강연회에서 "타인의 시각이 삶의 기준이 되고 실패를 경멸하는 문화가 지속되는 한 자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자리를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매일 40명꼴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지난 2010년 기준 25~34세 경제활동인구의 자살률은 10년 전보다 2.3배나 높아졌다.

이 교수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자살을 바라봤다. 그는 "인간은 경험으로 터득한 규범 내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만 돌릴 수 없으며 그 선택에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06~2009년 일간지에 보도된 자살 기사 4,500여건을 분석했는데 주로 '높은 자살률이 국가적 오명'이라거나 '소외계층의 유일한 탈출구' '부당한 대우나 정치체계에 대한 항의' '의지의 나약함' 등의 시각으로 모아졌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자살을 주로 신경정신병적 원인에서 찾는 서구와 달리 한국·중국 등 동아시아지역은 합리적 판단 아래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음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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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살 선택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타인지향적·목표지향적 문화를 꼽았다. 항상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삶의 기준이 되고 역사적으로 숱한 변혁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권력자가 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결과만 중시하는 사고로 인해 국민5,000만명의 생애주기가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타인의 욕망이 잣대가 돼 스스로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목표지향적 사회에서 실패자는 낙인이 찍히고 서둘러 배제된다. 가령 실직생활 끝에 선택한 직업에 대해 '나 같으면 그런 일 안 하고 말겠다'고 내뱉는 경멸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실패에 대한 불안과 사회에 대한 분노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특히 심각한 노인 자살도 노령 그 자체를 '사회적 주검'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자살 예방사업들의 중요성과 노력을 인정하지만 그것조차 과거 압축성장의 모습을 닮아 단기간 자살률 숫자를 낮추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자살 위험에 노출된 독거노인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자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이 교수 자신도 수도권 한 노인복지관에서 매주 월요일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 일에 1년 반 넘게 참여하고 있다. 그는 "천천히 사는 삶,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막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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