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터넷이 대화를 단절시킨다"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br>스티븐 밀러 지음, 부글 펴냄<br>서양문화사 통해 과거·현재의 대화 비교<br>"TV·컴퓨터·휴대폰등 '사회적 고립' 강화"




소크라테스와 백인 래퍼 에미넴이 한자리에 앉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에미넴이 욕설로 일관된 랩을 끝없이 지껄여 대면 아마도 소크라테스는 점잖게 듣고 있다가 'fuck을 연발하는 것도 노래인가'라며 한마디 넌지시 건네지 않을까. 거칠고 험한 현대의 대화와 예의와 품격을 갖춘 과거의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과거의 대화가 오늘날의 대화와 어떻게 다른 지를 비교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욥부터 뒷골목 래퍼 에미넴에 이르기까지 2500여년간 서양문화에 등장한 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대화의 사전적인 의미부터 대화가 갖추어야 할 요건, 여성이 공적 대화에 등장한 시기, 그리고 대화가 단절되는 원인 등 대화를 주제로 서양문화사를 풀어간다. 저자는 영국 철학자 마이클 오크쇼트가 말한 "대화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인용하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면대면 만남과 토론 그리고 위트가 섞인 조롱이 필수 요건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대체로 한 주제에 지나치게 기우는 것을 꺼리며,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 즉, 다양한 분야에 지식과 교양을 갖춰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대 대화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은 플라톤. 대화체 문학이 인기를 구가했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그는 대화의 달인이었다. 플라톤이 지금까지 위대한 대화꾼으로 남아있는 데는 그가 훌륭한 경청자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대화의 기본은 혼자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역사에서 대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는 17~18세기. 문화적인 대화가 오갔던 프랑스 살롱과 정치를 논했던 영국의 커피 하우스와 클럽은 대화를 풍성하게 만든 장소다. 그렇다면 당시 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종교ㆍ교역ㆍ여성으로 꼽았다. 세가지 주제는 찬반으로 구분돼 논쟁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서다. 또 반대자에게 악의없는 비아냥거림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대화의 단절이 시작된 때는 19세기 인쇄문화가 부흥기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쇄기술은 지식의 보편화로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읽는 동안은 침묵을 지켜 대화를 단절시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요즘은 어떠한가. 대화는 갈수록 줄고 있다. 저자는 1960년대 이후 등장한 반체제 문화와 대중문화 그리고 사이버 세계가 '대화의 적'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떠들어 대는 것은 대화가 아니기 때문. 또 사이버공간에서 아무리 댓글을 달고 채팅을 해도 면대면으로 만나야 하는 '진짜' 대화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대화를 단절하는 적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중문화와 디지털문화를 만든 TVㆍ라디오ㆍ컴퓨터ㆍMP3플레이어ㆍ핸드폰 등이 바로 그것. 저자는 "인터넷이 독재적인 체제에서는 사회적 고립을 허물어뜨리지만, 민주적 체제에서는 사회적 고립을 강화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오는 집단과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사이버 세계에 파묻힌 젊은이 등 '진짜 대화'와 점점 멀어져 가는 우리 사회에 "역사는 대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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