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생명윤리 논쟁' 윤리성 갖춘 과학강국 '밑거름'

배아줄기세포 연구 '생명윤리 논쟁'<br>'발목잡기식' 논란 과학·경제발전 저해 우려속<br>"장기적으론 꼭 거쳐야할 필수불가결한 과정"<br>과학-윤리학계 보다 치열한 논쟁 불가피할듯

지난 1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관에서 열린 황우석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의 만남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의 열기가 뜨겁다. 기자들의 뻗은 손에서 과학기술과 생명윤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연합뉴스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생명윤리’ 논쟁이 한국 의학ㆍ생명과학 분야의 전반적인 윤리의식 제고로 이어지며 한국을 보다 탄탄한 윤리적 토대를 가진 과학기술강국으로 이끌지 관심이다. 윤리논쟁이 ‘발목잡기식(式)’으로 과학과 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다 안전한 과학기술을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구영모 울산의대 교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윤리에 관한 사회적 논란에 불을 댕긴 셈”이라며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경제와 기술 수준이 커지면서 국내의 생명윤리 이슈가 세계적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의학이나 생명과학 분야에서 생명윤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낙태나 안락사, 유전자재조합(GMO) 식품 등의 윤리성과 안전성을 두고 논쟁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이런 논란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었다. 70년대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낙태까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등의 분위기에서 한국사회에서 ‘생명윤리’ 주장은 일종의 사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부시대통령까지 나서서 논쟁을 벌였던 식물인간 ‘테리 시아모’ 안락사 논란이나 일본과 유럽의 GMO식품 논쟁, 체외수정을 통한 시험관아기나 장기이식의 윤리성은 한국인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셈이다. 때문에 최근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쟁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첫 생명윤리 이슈가 된다는 평가다. 길고 지루한, 그리고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논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논란을 단순히 일과성으로 치부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아줄기세포 논란의 경우 문제가 되는 내용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체세포 복제에 사용된 난자와 이를 통해 복제된 배아를 인간생명의 시작으로 볼 것이냐다. 또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배아파괴가 반드시 수반되는 데 이것이 ‘살인’이냐가 쟁점이다. 가톨릭 등 종교계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부터 생명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체세포를 난자에 넣어 분열시킬 경우도 하나의 생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교수측은 수정된 난자가 자궁에 착상하는 이후부터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수정후 적어도 2주는 지나야 생명체 단계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수정란은 단순한 세포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명파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생명도 아닌 세포덩어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살아있는 난치병 환장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5일 황우석 교수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대주교의 만남에서도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천주교측은 배아파괴를 동반하지 않는, 인간의 골수나 탯줄혈액에서 뽑아내는 성체줄기세포로도 난치병 치료가 가능하다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지만 황 교수의 대변인 격이 안규리 서울대 교수는 “성체줄기세포로는 난치병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성 논란이 홀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은 생명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차이 때문이다. 비슷한 경우로 낙태 문제에서도 태아의 생명성을 언제부터 인정할 것이냐에 대한 해답은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식물인간의 안락사나 뇌사자의 장기이식 문제에서처럼 죽음을 어느 순간으로 볼 것인가 로도 연결된다. 때문에 최근의 배아줄기세포 논란에서 천주교 등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생명과학의 발전필요성만을 이유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과학기술을 최고의 국가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현재 국내상황에서 황우석 교수가 연구를 중단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줄기세포 연구분야에서 국내 배아줄기세포 배양 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섰고 국가적 숙원사업인 ‘노벨과학상’ 유력설까지 나오는 상태에서 쉽게 비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황 교수는 지난 7일 관훈토론회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에 나서기보다 옷깃을 여미는 과학도의 자세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생명윤리학회장인 황상익 서울대의대 교수는 “학술토론을 ‘소모적’이라며 회피하고 있는 것은 민주시민과 연구자의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과학자의 입장에서 공개토론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생명윤리 개념이 국내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말부터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경제성장을 해칠 수도 있는 과학에서의 윤리성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둔감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배아의 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처음으로 추출하는 데 성공한 황 교수 등 많은 과학 기술자들의 노력으?이제 한국은 생명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선진국 진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황 교수가 성공한 복제배아에 유도된 줄기세포를 통해 난치병을 치료하기 까지는 10여년이상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으로 평가다. 그때마다 필연적으로 윤리문제는 따라다닐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인 인간복제가 발생, 과학기술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과학계와 윤리학계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가 걸려있는 셈이다. 보다 치열한 윤리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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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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