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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연설을 보면 정권 말기 정부의 경제정책이 '현실론'으로 급격하게 유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내외 상황이 불안한 만큼 '747 경제정책'으로 상징되는 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물가에 주안점을 둬 정권 말기에 연착륙을 도모하겠다는 얘기다. 더불어 성장을 해도 과실이 골고루 배분되지 않는 만큼 차라리 물가를 안정시켜 여론의 호응을 얻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올해 역시 물가가 외생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워낙 크고 더욱이 이란 제재 등 유가를 끌어올릴 변수들이 많아 마땅한 즉효약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장보다는 물가 잡겠다=이 대통령이 '3% 초반'의 물가관리를 강조한 것은 경제정책 기조를 성장보다는 안정에 두겠다는 의미다. 현 상황에서는 기술적으로도 성장보다 물가를 관리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통상적으로 물가를 이야기할 때 전년 대비 지수 상승률을 거론하기 때문에 지난해 물가가 높았던 만큼 올해는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누그러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통계치가 아니라 체감물가다. 정부가 3% 초반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을 억제한다고 해도 이미 각종 상품 및 서비스의 공공요금 물가는 크게 올라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지난해 말 발표한 '2012년 경제정책 방향' 자료를 통해 다양한 물가안정대책을 쏟아냈다. 시중 주유소보다 기름 값을 리터당 최대 100원까지 싸게 팔 수 있는 대안주유소(일명 '알뜰주유소')를 전국에 1,500여곳까지 설치하고 이동통신 맞춤형 요금제의 하한구간을 끌어내려 통신요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이밖에도 상품 유통구조를 투명화해 숨은 가격거품을 제거하고 전국에 보금자리주택 15만가구를 공급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복안도 내놓았다
◇일자리 창출만 12번 언급=정부는 올 경제정책에서 물가안정과 함께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20분 동안'일자리'만 무려 12번을 언급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일자리 예산으로 짜고 10조원이 넘는 돈을 일자리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우선 공공기관 신규채용 규모를 지난해 1만명에서 올해 1만4,000명으로 늘리고 중소기업 청년 인턴은 4만명(지난해 3만2,000명), 공공기관 청년 인턴은 1만2,000명(지난해 1만명)을 뽑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공공기관 신규채용의 고졸자 비용을 20%(지난해 3.4%)까지 올리고 청년 인턴에서도 고졸자 참여를 확대한다.
청년 창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늘린다. 정부는 올해 5,000억원의 창업자금을 만들어 청년들이 1인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이밖에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우리 미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인식을 밝히고 관련 정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정부가 올해부터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제도는 '만 5세 누리 과정'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육ㆍ보육 과정을 통합한 이 과정이 시작되면 만 5세 아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대상이 현재 '소득하위 70% 이하'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고 지원단가 역시 월 17만7,000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