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40여일간 원·달러 환율 상승률이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높은(원화 약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 위기에 이어 중국의 기습 위안화 절하 등 대외 불안 요인에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금의 이탈까지 겹친 탓이다. 외환 당국은 시장 변동성이 워낙 심해 섣불리 개입했다가 보유 외환만 축낼 수 있고 막대한 경상흑자로 미국, 국제통화기금(IMF)의 집중 견제도 무시할 수 없어 손발이 묶인 상태다. 이 사이 외환시장은 외풍에 휘둘리는 '천수답'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3일 원화 가치는 달러당 1,174원에 장을 마쳐 7월 초에 비해 6.8% 추락했다. 원화 가치 낙폭은 '위안화 쇼크'에다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외환위기 가능성이 불거진 말레이시아(-7%) 다음으로 컸다. 또 원자재 가격 급락의 충격이 강타한 호주(-4.1%), 뉴질랜드 달러(-2.5%), 인도네시아 루피아(-3.4%)보다도 심했다. 원화 가치 하락률은 태국 밧(-4.3%), 싱가포르 달러-(3.9%), 인도 루피(-1.8%) 등 다른 아시아 신흥국보다 더 컸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 발표 직후인 12~13일에도 원화 가치 하락률은 2.4%로 말레이시아 링깃화(-2.6%), 중국 위안화(-2.9%)를 제외하면 가장 컸다. 인도네시아 루피아(-1.7%), 싱가포르 달러(-1.3%)의 하락률도 큰 편이었지만 원화에는 미치지 못했다.
원화 가치가 지난달 이후 급격히 추락한 것은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된데다 중국 증시가 급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후 위안화 기습 절하는 신흥국 통화 전반의 약세로 이어졌으며 특히 중국 경제가 안 좋다는 신호라고 해석돼 원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손정선 외환은행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가들은 환차손 우려에 국내 자금을 뺐다"며 "외환시장이 환차손 우려와 원화 가치 하락이 악순환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외환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14일 위안화를 소폭 절상 고시하면서 충격은 다소 진정됐다고 보지만 광복절 연휴 기간에도 24시간 점검체제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연휴 다음날인 18일 오전 장병화 부총재 주재로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어 금융시장 움직임을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