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문화산책] 서울이 허전한 이유
김진동(언론인)
김진동(언론인)
달포 전 독일에 사는 친구가 5년여 만에 서울에 왔다. 모처럼의 귀향을 축하하고 고단했을 오랜 타국생활을 위로하는 술자리에서 그는 감동 어린 어조로 서울의 발전상을 침이 마르게 찬탄했다. 인천공항 청사부터가 그에게는 놀라움이었다.
공항에서부터 매끄럽게 트인 도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하늘이 낮다 하고 치솟은 현대식 호화 빌딩과 아파트 숲이 도열했다.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한국 발전의 상징을 보는 듯해 한껏 흐뭇함에 취했을 것이다. 그는 끝내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다.
서울은 지금 거대한 공사장이나 다름없다. 매일 부수고 짓고 파고 덮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한국인의 급한 성미만큼이나 급하게 변하고 있다. 최고병이 도진 듯 세계 최고로 높게, 최고로 빨리 올린다. 예술적으로나 문화적 가치는 돌볼 틈이 없다.
서울은 미국과 일본 따라하기에 여념이 없다. 서울은 미국의 뉴욕이 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일본의 도쿄를 모방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시피 하다. 도쿄가 뉴욕을 닮아가고 서울은 작은 도쿄나 다름없다고 한다. 또 지방도시는 서울을 닮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서울은 잘해봐야 2류나 3류 정도 미국 도시의 아류가 되는 데 그칠 뿐이다.
서울은 서울을 찾아오는 관광객을 쫓아내는 꼴이나 다름없다. 개성도 매력도 없는 도시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문물이 없는 것이다. 문화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인데다 그나마 현대화한답시고 부수고 파헤쳐버렸다. 겨우 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문화조차 개발에 밀려 머지않아 박물관의 기록으로나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를 형편이다. 열심히 미국을 닮아가다 보니 국적도 잃어가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보려고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보여줄 것도 즐기게 할 것도 없으니 관광객을 내쫓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서양을 닮지 않고 서양에 물들지 않은 동남아나 유럽으로 밀어내는 꼴이다. 유럽은 어느 도시를 가도 현대의 거리에서 역사의 숨결을 호흡할 수가 있다. 전통문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서울은 그런 특성이 없다. 역사와 전통의 현장에는 국적 잃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20여일 고국을 숨쉬고 떠나는 그 친구의 표정은 귀국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쉽고 허전함을 감추지 못한다. “친구여, 자네는 떠나지만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네.”
입력시간 : 2004-07-23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