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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의 건설부문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이 오는 4월로 예정된 가운데 캐스팅보트를 쥔 산업은행이 두 회사 간 합병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산은은 현대엠코를 흡수 합병하는 현대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로서 앞으로 행사할 주식매수청구권 규모에 따라 두 회사 간 합병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을 지렛대로 삼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던 현대차그룹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업계와 금융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의 2대 주주인 산은은 최근 회사 쪽에 현대엠코와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이는 산은이 현재 보유한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약 30만주, 7.40%)의 전부 또는 일부를 회사가 사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주식매수청구권)가 생겼다는 의미다.
통상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은 기존 주주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할 경우 해당 주식을 매수해야만 한다.
문제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가 합병계약을 할 당시 주식매수청구 대금의 합이 1,000억원을 넘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넣었다는 점이다. 건설과 설계 분야를 통합해 회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커지면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해 합병의 실익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흡수되는 현대엠코의 주주 구성을 보면 현대차그룹의 주요 계열사이거나 특수관계인이어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부담이 없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은 최대주주인 현대건설(72.55%)을 빼면 산업은행을 비롯한 소액주주(약 60만주, 14.80%)들이보유하고 있다.
1,000여명으로 분산된 소액주주와 달리 산은이 보유한 지분은 금액으로 환산하면 1,210억원(주당 40만3,586원 적용)으로 합병계약 해지요건(25만주, 1,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합병반대 의사를 밝힌 산은이 보유주식의 83% 이상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딜은 깨질 수 있다. 산은이 두 회사 간 합병성사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산은이 보유주식 일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고 지금까지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소액주주들이 합세해도 합병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산은은 현재 합병반대 의사만 밝힌 상황으로 주식매수청구권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은 입장에서는 액면가 수준으로 매입해 10년 넘게 보유해온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을 지금 팔면 1,000억원에 가까운 차익실현이 예상돼 쉽게 포기하기도 힘들다. 지난해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며 "실제 권리를 행사할지, 하게 된다면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좀 더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의 합병반대 의사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19일 주주총회 전까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지켜보고 대응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매수청구 규모가 25만주를 상회할 경우 합병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시간이 충분히 남은 만큼 산은과 소액주주 등 주주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