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북핵 문제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의 공격 시나리오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여느 때와 다르게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이 북한이 비공식 루트를 통해 ‘미국의 공격시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공언하고 있어 한반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다만 위기감이 그대로 전쟁상황으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미국의 공격 가능성은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라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제기됐을 때 수많은 상황을 가정해 대비책을 세우는 게 미국 외교의 전통이라는 점에서 설령 핵공격 시나리오가 있다고 해도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기까지는 다른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는 얘기다.
조건이란 더 이상의 상황악화를 뜻한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직간접 투자액이 최소한 1,500억달러 이상에 달한다는 점에 비춰서도 대규모 폭격이든, 핵시설에 대한 부분적 공습이든 미국이 섣불리 북한에 대한 공격에 나서기는 힘든 실정이다.
두번째는 다각적인 외교적 수단이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러시아에서 열리는 대독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북한을 제외한 북핵 6자회담 당사국 국가원수가 한자리에 모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8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핵 문제 해결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9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주요 의제는 북핵 문제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ㆍ중국ㆍ일본의 정상들도 각각 공식ㆍ비공식 자리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오는 6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직접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6월 말에는 서울에서 일본과의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릴레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급작스런 공격이 개시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0) 수준에 가깝다.
문제는 당장 미국의 선제공격이 강행되지는 않는다고 해도 북핵 문제로 야기된 긴장감이 가라앉기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의 상호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다. 북한과 미국은 사사건건 원색적인 문구를 동원한 상호비방전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대화 당사자로도 간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인식이 쉽게 변하지도, ‘북한은 불량국가’라는 미국의 생각이 바뀌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상호비방전과 주변국과의 대화가 병립하는 가운데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안보리 회부와 군사적 제재 가능성을 흘리는 등 대북 압박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얼마나 주변국들의 입장이 정리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