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강화도와 슬로시티


"진짜 노랗다." "배추김치도 한쪽 같이 먹어봐. 기가 막힌다." 지난주 인천광역시도시개발공사와 자매결연을 맺은 강화도 당산리 마을에서 농번기 일손 돕기를 할 때의 일이다. 새참 때 방금 쪄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김치는 아침부터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직원들 얼굴에 함박웃음을 금세 피워낸다. 쭈그려 앉은 채 행여 고구마에 상처라도 날까 조심조심 호미질을 하다 보니 다리는 저려오고 허리도 뻑적지근하던 차에 새참은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희끗한 머리에 검게 그을린 아낙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장님이 굳은 살이 박인 손으로 따라주시는 막걸리잔을 받는 필자의 하얀 손이 왠지 민망한 기분이었다. 강화도는 인천광역시 면적의 41%를 차지하고 있지만 인구는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느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 어르신들만 남아 65세 이상 주민이 22%가 넘는 초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광역시에 속해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인천이라 하면 항구도시, 인천공항, 경제자유구역 송도는 쉽게 떠올리지만 단군과 마니산 천제(天際)라는 전통을 가진 개국의 고장이면서 고려시대 대몽항쟁 때에는 한동안 수도이기도 했던 강화군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재배되는 순백색의 왕골로 짠 화문석이 고려시대 인삼과 더불어 인기 수출품목으로 오늘의 코리아를 만든 효자 상품이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역사와 유적은 잊혀지고 젊은 사람들은 시내로 빠져나가 고된 농사일은 어르신들만 남아 지키면서 지역 고유의 문화가 퇴색돼가는 도시 근교 농촌의 우울한 현실을 밝혀 줄 수 있는 실마리는 바로 현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인천 강화군을 짚어본다면 수도권과의 우수한 접근성으로 많은 사람이 즐겨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을 비롯해 백여 점이 넘는 문화재로 역사적 볼거리도 풍부하고 교육의 현장으로도 훌륭하다. 이들은 모두 지역 고유의 볼거리와 토산품ㆍ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늙어가는 시골마을을 슬로시티로 탈바꿈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정신 없이 빠른 속도에 취해 있는 인근 수도권 도시민들의 삶의 속도를 줄여 조금은 여유를 찾아 천천히 걷게 해줄 멋진 슬로시티의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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