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조세회피처


세금 회피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갈리면서 인류는 문명을 꽃피웠지만 그와 동시에 탈세의 역사도 시작됐다. 세금은 잘만 활용하면 나라의 번창을 이끌었지만 잘못하면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이집트와 로마 제국이 그랬고 중국 역시 숱한 제국의 명멸과정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있었다.


△지중해를 누비던 고대 그리스 무역상들은 지금의 수입관세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외딴 섬에 교역 상품을 숨겨놓았다. 지금으로 치자면 역외탈세인 셈이다. 여기서 연유한 게 조세회피처다. 이런 역사적 전통 때문인지 현재의 조세회피처 대부분이 섬나라인 것이 공교롭다. 전세계적으로 50여곳에 이르는 조세회피처는 세금이 아예 없거나 현저히 낮아 재산을 숨기고 싶은 부호로서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세제상의 이점뿐만 아니라 금융거래 내역도 철저한 비밀에 부치니 비자금 같은 검은 돈이 숨어들어가기 딱 좋다. 이곳으로 흘러들어간 자금 규모는 많게는 무려 20조달러. 전세계 1년치 국민총생산(GDP)의 30%에 이르는 부가 묻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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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와 전쟁을 선포한 국세청으로서는 귀가 쫑긋할 만한 소식이 나왔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재산을 숨긴 수천명의 신원이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의 집요한 추격 끝에 드러났다고 한다. 세계 내로라 하는 세무당국도 파헤치지 못한 보물섬의 비밀을 푼 탐사 보도의 개가다.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딸과 스페인 철강재벌의 미망인, 러시아 현직 총리 부인에 이르기까지 170개국 정ㆍ재계 거물을 망라한다. 지금껏 드러난 이름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파장은 상상 초월이다.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인구가 채 3만명도 안 되는 작은 섬나라지만 40만개가 넘는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서류상에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들이다. 투자펀드도 2,000개에 달해 케이먼 군도와 쌍벽을 이루는 역외투자펀드의 천국이기도 하다. 국세청이 문제의 명단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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