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K팝 리듬과 時調의 운율


지구촌에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은 K팝과 댄스, 아이돌 스타 스타일, 의료관광, 한국산 가전제품, 자동차, '불고기 브라더스'등으로 확산되며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K팝 열풍은 기적적이다.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과 비트감,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멋진 댄스 실력의 군무로 대표되는 K팝은 중독되기 쉽고 전염성이 강하다. 단순하고 매력적인 후렴구의 리듬과 가사가 여러 번 반복되는 후킹(hooking) 효과 덕분이다.

심장박동수 우리 말과 비슷해 편안

이런 형식의 '후크송'은 평균 62.76%라는 대단히 높은 소리 안정도(듣기 편한 안정도는 약 30~40%)를 갖고 있다. 이 수치는 인간의 심장 박동수와 비슷하다. 후크송의 1분당 박자수(beat per minute)도 약 123bpm으로 가벼운 달리기를 마쳤을 때의 심장 박동수와 비슷하다. 인간의 생체리듬에 매우 근접해 있어 편하게 즐길 수 있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박자로 약간 흥겨운 느낌을 주는 K팝 열풍에는 이처럼 오묘한 '소리ㆍ박자의 과학'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누워서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 정도의 편안한 운율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 운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시조(時調)다. 네 박자로 이어지는 네 걸음의 안정적이면서도 살아있는 운율이다. '네 박자 속에/사랑도 있고/이별도 있고/눈물도 있네'모 가수의 노래에도 있듯이, 그리고 노래방에서 우리 모두가 익히 경험했듯이, 우리 한국인의 생체리듬은 바로 네 박자다. 시조는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네 걸음이 세 번 반복(초장ㆍ중장ㆍ종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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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노래만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언어, 곧 우리가 쓰는 말이 모두 네 걸음이다. 어머니와 딸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어디 아프니?"(어머니), "머리가요"(딸), "얼마만큼 아프냐?"(어머니), "깨질 듯이 아파요"(딸). 딸의 대답을 한 문장으로 만들면 "어머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요"가 된다. 네 걸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 모두가 네 걸음이다.(실은 이렇게 말한 것도 네 걸음이다.) 네 걸음은 한국인 모두가 갖고 있는 후크송 같은 생체리듬이다. 그렇지만 시조는 노래를 훌쩍 뛰어넘어 한국인의 숨결이고 목숨이고 사랑이다. 당연히 그 정신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그대로 살아있다.

필자는 한류의 마지막 보루가 네 걸음의 살아있는 생체리듬인 시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예ㆍ노래ㆍ음식 등의 한류 열풍은 유행병처럼 언제 시들해질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인 모두가 가진 삼행시, 네 박자의 시조는 그렇지 않다. 어느 교수가 미국에서 한국의 시를 가르쳤을 때 얘기다. 자유시를 얘기할 때는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시조를 얘기하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당신네 민족도 언어를 가지고 있느냐" "당신도 시조를 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시조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숨결이며,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이다. 그 중요성을 세계인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데 우리만 우리 것을 모르고 있고 박대해왔다.

시조 운율로 세계에 한글 가르치자

다행히 세계 곳곳에서 한글을 배우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바람을 단순히 한글을 기계적으로만 가르치지 말고 시조를 통해 우리 것을 자연스레 알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인문학의 근간을 세우는 일이며 적어도 백년을 내다보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오늘날 '한류문화'바람을 이끌어온 국내 주요 기업ㆍ금융기관들도 이에 대한 과감한 콘텐츠 발굴을 위해 투자해야 하고, 국가도 이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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