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가가 착해지고 있다. 불투명한 집값 전망에 금리까지 오르면서 무주택자들이 꿈적도 하지 않자, 건설사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자발적으로 분양가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중도금 무이자 같은 마케팅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무주택자들은 낮아진 분양가에는 적극 호응했다. 분양가를 낮춘 단지들은 최근의 청약 한파 속에서도 순위 내 마감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설사들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분양가를 고집했다. 청약자들이 집 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그 아파트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값이 오를 것이란 믿음이 무너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분양가가 높으면 아무리 유망지역, 유명 브랜드라도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시장의 냉혹함을 경험한 건설업체들은 자발적인 분양가 다이어트를 선택하고 있다. 수도권에 대단지 아파트를 분양중인 한 대형 건설사의 분양소장은 “과거에는 관행처럼 주변 아파트보다 10% 정도 높게 분양가를 책정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자칫하면 미분양 사태를 맞을 수도 있는 만큼, 배짱을 부릴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분양가 다이어트’ 착한 아파트 속속 등장= 부동산 호황기 때는 신규 아파트가 들어서면 주변 집값이 덩달아 뛰었다. 이때문에 분양 승인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는 늘 긴장했다. 분양가를 낮추려는 지자체들은 고 분양가를 고집하는 건설사와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고, 밤샘 힘겨루기도 예삿일이었다. 건설사들은 당초 제시했던 분양가에서 조금 낮춰, 지자체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타협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설사들이 지자체에서 승인 받은 가격 보다 분양가를 더 낮추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 용인시 신동백지구에 아파트를 분양한 서해종합건설은 용인시가 승인한 것보다 분양가를 20%가량 내렸다. 3.3㎡당 1,250만원에 승인을 받았지만, 실제 분양가는 3.3㎡당 990만원 선이었다. 무주택자들은 기꺼이 청약통장을 꺼냈다. 전용 116㎡규모의 대형 일부가 미분양이 났지만 전용 85㎡ 규모 아파트는 3순위에서 최고 3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된 것이다. 이용호 분양소장은 “인근 동백지구의 아파트 시세(3.3㎡당 1,000만~1,050만원)보다 싸게 내놔야 팔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분양가 인하의 약효가 검증되자, 중견 건설사에 이어 대형 건설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신동에 아파트를 분양한 삼성물산은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 가격에서 더 내렸다. 심사위원들이 책정한 분양가상한제 가격보다 3.3㎡당 분양가를 평균 20~40만원 가량 낮게 낮춘 것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게 평가되는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규 아파트가 공급되자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2단지 일부 평형을 제외하고 전 주택형이 순위 내에서 마감, 평균 0.9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에 대단지를 분양하는 대림산업 역시 사업초기 책정했던 분양가보다 20%이상 가격을 낮췄다. 3.3㎡당 분양가는 1,600만원선. 저렴한 분양가에 모델하우스 문을 연지 3일만에 5만명의 인파가 찾는 등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 아파트는 얼마 전 직선거리로 1.5㎞거리에 과천 보금자리지구가 발표돼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입장. 그렇지만 전체 일반 분양 아파트의 72%를 차지하는 중소형 평형은 모델하우스 내방객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인하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금자리 지구가 점차 위력을 발휘하는 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보금자리는 신규 분양뿐만 아니라 기존 아파트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최근 정부가 과천과 고덕 등 강남권 인근 지역에 5차 보금자리 지구를 선정하자 주변 재건축 가격이 2,000만~3,000만원 가량 빠졌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의 발표대로 앞으로 주변 집값의 80%선까지 보금자리 아파트 가격을 올리더라도 민간 아파트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높다”면서 “보금자리와 경쟁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다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분양가를 낮춰 계약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미분양에 따른 금융 부담은 떠 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덤이요.” 설계 차별화로 시선 잡는다=고객의 마음을 열기 위해, 건설사들은 ‘덤’경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 사용 면적을 늘리면 집 값을 싸게 보이도록 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광폭 발코니를 적용한 곳을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숨은 공간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집이 넓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소형 아파트에도 대형에 적용하던 4베이 평명을 도입하기도 한다. 반도건설은 중대형 아파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4베이 구조를 중소형에도 적용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달 한강 신도시에 공급한 아파트 전용 59㎡에 4.5베이 구조를 적용한 데 이어 양산신도시에는 63㎡에 4베이를 채택했다. 그 결과 양산에 공급한 아파트는 최고경쟁률 11.64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전 평형대 1순위 마감에 성공했다. 4베이란 전면에 방과 거실, 화장실 등을 일렬로 배치한 것으로 모든 방을 남향으로 놓을 수 있어 채광에 유리하고, 발코니를 확장할 때 실 사용 면적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실제 양산신도시에 공급한 63㎡ 아파트의 발코니를 확장하면 최대 94㎡까지 늘어난다. 반도건설 관계자는 “베이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실수요자의 관심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근 평균경쟁률 12대 1을 기록하면서 모든 평형대가 1순위 마감됐던 쌍용건설의 아파트 역시 4베이를 도입한 평형대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분양한 이 아파트는 전용 84㎡중 4베이가 적용되지 않은 곳은 B타입은 9.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4베이를 적용한 A타입은 20.65대 1의 최고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동원개발이 부산 정관신도시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거실 3면이 모두 창문으로 탁 트인 ‘3면 발코니 평면’을 선보여 청약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고경쟁률 32.6대1을 기록하면서 전 평형대의 청약 접수를 마감한 것. 기존 타워형 아파트들이 지(只)자 구조인 반면 이 아파트는 십(十)자형 구조로 설계해 3면의 발코니를 모두 확장하면 최대 서비스 면적이 23㎡에 달한다. 발코니 폭을 늘린 ‘광폭 발코니’도 널찍한 실사용 면적을 보장해 인기가 높다. 전용면적 110㎡에 2m 발코니를 적용해 확장할 경우, 1.5m 발코니보다 실내가 6.6~9.9㎡ 넓어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광폭 발코니는 넓은 면적뿐만 아니라 희소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부터 발코니 폭이 1.5m로 규제돼, 앞으로는 광폭 발코니를 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GS건설과 두산건설이 울산 무거동에 분양한 아파트와, 대림산업은 경기 의왕 내손동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는 각 폭 2m의 광폭발코니를 도입했다. 대림산업의 모델하우스를 찾은 한 20대 미혼 여성은 “지금은 부모님과 전용 150㎡규모 아파트에 사는데, 전용 59㎡는 아주 작을 줄 알았다. 그런데 광폭 발코니를 확장하니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두환·문병도·김정곤·윤홍우·서일범·김경미기자 d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