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귀족」을 살리자(사설)

중소기업의 새로운 활로개척 시범사례로 관심을 모았던 「귀족」구두가 부도를 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자본과 기술 마케팅에서 재벌기업을 당해낼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 똘똘 뭉쳐 공생의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좌절위기를 맞은 때문이다. 「귀족」구두는 더욱이 이제는 사양산업으로 전락해 버린 신발산업을 회생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로 출범한 터여서 아쉬움이 더하다.한국신발공업협동조합의 41개회원사가 지난해말 「귀족」구두를 출범시키면서 이를 2000년까지 세계10위의 신발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신발산업의 퇴락은 고유 브랜드 개발과 고가·고품질의 소량·다품종개발을 게을리하고 대량생산과 저가수출에 안주했던데서 비롯됐다. 「귀족」의 탄생은 이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었다. 「귀족」구두가 고유브랜드로 제품의 공동개발, 공동생산, 공동판매의 수평적 연결체제를 구축한 것은 재벌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수직적 결합 위주로 돼 있는 우리나라 기업구조하에서 신선한 시도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는 수직계열화가 갖는 지배적 구조를 협력적 구조로 바꾸는 것으로 경영학에서 말하는 외부조달(Outsourcing)의 전형이다. 이같은 경영기법은 물류 공동화와 공장의 집단화등으로 이어지면서 비용과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게 된다. 이번 부도의 직접적인 원인은 1백10여개의 대리점들이 조합과의 불화로 대금결제를 거부한데서 비롯됐다. 대리점들은 조합측이 공급하는 물건이 품질도 떨어지는데다 규격도 맞지않고 납품이 특정업체로 편중되는 등의 불만을 말해왔다. 이는 무엇보다 출범 당시 약속했던 품질고급화가 아직도 미흡함을 말해준다. 고유브랜드는 이름만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두는 패션산업으로 디자인과 마케팅이 중요하다. 부단한 품질 및 디자인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가격파괴라는 이름의 저가공세만으로는 해외시장에서는 물론 국내시장에서도 설 땅이 없다. 그 점에서 조합집행부의 무능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대리점들은 조합집행부가 물러나면 대금결제를 하겠다는 입장이고 부도후 집행부는 사퇴의사를 밝혔다. 조합측은 이번 부도를 계기로 심기일전해 「귀족」구두를 살리는데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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