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북한의 새 지도부가 ‘유훈통치’를 시사한 데 따른 것이다. ‘선군노선’과 ‘강성대국 건설’로 대변되는 김정일 시대의 정책이 새해에도 유지될 것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분야별로 보면 남북관계에서는 5ㆍ24조치, 천안함ㆍ연평도 사과문제에 조문갈등까지 겹치면서 대남비난 수위가 높아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정치ㆍ군사 부문에서는 ‘김정은 영도체제’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고, 경제에서는 경공업과 농업 활성화를 부각했다.
◇남북관계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대한 우리정부의 조문태도 등을 또 도마 위에 올렸다.
신년사는 북측의 대화ㆍ협상 노력에도 “남측은 친미사대와 동족대결, 북침전쟁책동을 강화했다”고 주장하고, 김 위원장 사망과 조문에 대한 우리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남조선 역적패당의 반인륜적·반민족적 행위”라는 표현으로 격하게 비난했다.
북한이 신년사설에서 이처럼 거친 표현을 사용한 것은 2009년 이후 3년 만이다. 북한은 2010년, 2011년에는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또 “온 겨레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고 대결을 격화시키는 역적패당의 반통일적인 동족적대정책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나가야 한다”며 대남 선전ㆍ선동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점도 내비쳤다.
아울러 10ㆍ4 남북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올해에 ‘온 겨레가 새로운 신심에 넘쳐 조국통일의 문을 열어나가자’는 구호 아래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자고 남한과 해외동포들을 선동했다.
또 “온 민족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무모한 군사적 도발과 무력증강, 전쟁연습책동을 짓부셔버려야 한다”며 “조선반도 평화보장의 기본장애물인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미군철수 카드까지 꺼냈다.
◇대외관계 = 사설은 대미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 작년 김 위원장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을 부각하며 “세계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보장하고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서 중대한 계기로 됐다”고 주장했다.
나진ㆍ선봉 경제특구 등을 중심으로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와 정치·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제국주의자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사회주의 한 길로 나아가는 우리의 전진운동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강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친중ㆍ친러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치ㆍ군사ㆍ사회 = 김 부위원장의 유일영도체제가 특히 강조됐다.
사설은 “우리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이시며 영원한 단결의 중심이시다. 인민들의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하며 인민을 위해 헌신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의도를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김일성 조선의 첫째가는 국력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사상의 위력, 단결의 위력이다” “우리의 일심단결을 대를 이어 계승되는 가장 공고한 단결로 강화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일심단결을 역설했다.
정치분야에서 새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올인’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김 부위원장의 권력 기반이 불안한 상황임을 반증한다.
군사분야에서도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군체계를 세우기 위한 당정치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가야 한다”며 ‘김정은 유일영도’를 역설했다.
또 “전군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더 높이 추켜들고 김정은 동지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천만자루의 총, 천만개의 폭탄이 되여 결사옹위해야 한다”며 군의 충성을 강조했다.
사설은 아울러 “제국주의 사상ㆍ문화적 침투를 분쇄하고 이색적인 생활풍조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아 북한내 한류열풍 등 사회 이완 현상을 겨냥한 주민통제 의지를 드러냈다.
◇경제 = 올해는 북한이 선전해온 강성대국 원년이지만 경제분야 구호는 예전보다 훨씬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식량난조차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감안한 듯 그동안 단골메뉴처럼 내세웠던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자’는 슬로건 대신 “강성부흥 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총돌격전은 벌여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원론적인 주장에 그쳤다.
경공업과 농업을 ‘강성대국 건설의 주공전선’이라며 “현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해법은 “당조직들의 전투력과 일군들의 혁명성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검증된다”는 것이 전부였다.
사설은 “인민의 기호에 맞고 인민의 인정을 받는 질 좋은 경공업제품들이 더 많이 쏟아져나오게 해야 한다”거나 “벌방지대이건 산간지대이건 어디서나 알곡 정보당 수확고를 획기적으로 높여나가자”고 촉구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자주 사용해온 ‘강성대국’보다는 ‘강성국가’라는 표현이 부각된 것은 북한의 여전히 어려운 경제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1년 결산 = 김 위원장 사망을 부각하며 전년도 성과에 대한 비중을 줄였다.
사설은 첫 문장에 “피눈물 속에 2011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로 시작해 “김정일 동지와 영결하게 된 것은 5천년 민족사에서 최대의 손실이었고 우리 당과 인민의 가장 큰 슬픔”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한 해를 ‘강성국가 건설에서 대혁신, 대비약이 일어난 승리의 해’라고 평가하면서 희천발전소를 비롯해 경공업공장의 개건 완비, 축산시설 현대화, 양어장과 대규모 과일생산기지 등을 각 부야의 성과로 짤막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 못한 채 “인민생활 대진군에서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고 21세기 경제강국의 강력한 토대가 더욱 튼튼히 마련됐다”는 식의 원론적 평가에 그쳤다.
/온라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