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연수 당시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br>당국 "부실기업 퇴출로 시장 안정·신인도 제고" <br>추가지원 불가 강조 헐값 매각협상 불러<br>현대 구조조정 원칙 '신중 결정후엔 신속 지원' <br>현대건설·하이닉스 재기 성공 가장 기억남아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연수 당시 외환은행장 직무대행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당국 "부실기업 퇴출로 시장 안정·신인도 제고" 추가지원 불가 강조 헐값 매각협상 불러현대 구조조정 원칙 '신중 결정후엔 신속 지원' 현대건설·하이닉스 재기 성공 가장 기억남아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 사진= 이호재기자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지난 2002년 정부의 하이닉스반도체 매각방침에는 최고위층의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이닉스를 저가로 마이크론에 매각하면 채권금융기관들은 당장 손실을 입게 되겠지만 부실기업 퇴출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고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도 올라가며 미국과의 통상마찰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다.” 이연수(63ㆍ사진) 전 외환은행 행장 직무대행 겸 부행장(현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미국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많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은 불가능하고 하이닉스에 대한 추가지원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헐값에 사려는 마이크론의 입장을 도와주고 매각협상을 불리하게 진행시킬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000년부터 부행장을 맡아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했고 퇴임 직후에는 몸담았던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 원칙에 대해 “지원 여부는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하되 일단 살리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적기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해 단칼에 구조조정을 끝내고 경영진은 책임을 물어 퇴진시켜야 한다. 찔끔찔끔 지원하다간 기업도 죽고 채권단도 손실을 본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위원장의 손을 거친 하이닉스나 현대건설은 채권단의 대규모 자금지원에 힘입어 우량기업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한 데 대해 “매각 당시까지 외환은행은 3,000여명의 직원 구조조정, 증자, 자회사 및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꽤 건전해졌다. 사모펀드에 매각할 만큼 부실은행이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대그룹의 위기는 해외신용평가회사들이 처음 경고했다. 주채권은행은 언제 위기를 감지했나. ▦지난 2000년 초 현대그룹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나서부터다. 99년 말부터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징후가 있었지만 정주영 회장의 후계자리를 놓고 벌어진 소위 ‘왕자의 난’으로 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졌고 이는 자체자금이 부족했던 현대의 자금수급에 치명상을 입혔다. 2000년 3월 현대상선을 시작으로 5월 현대건설, 10월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가 차례차례 자금난에 봉착했다. 2000년 6~7월 주거래 은행 임원으로서 하이닉스를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회사의 자금담당 임원들은 주거래 은행이 관심을 갖게 되면 오히려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며 우리의 방문 자체를 달가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11월이 되니까 자기들이 찾아와서 매달렸다. -현대그룹의 자금난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탓이다. 계열사별로 보면 현대건설의 경우 거액의 이라크 미수채권, 수익성이 거의 없는 과도한 해외건설 수주,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아파트 미분양 사태 등으로 손실이 커졌고 서산 간척지에 6,000억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투자액이 금방 회수되지 않은 점도 원인이다. 특히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거치며 신인도 하락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현대석유화학은 자기자본이 아닌 막대한 부채로 과도하게 투자한 게 문제가 됐다. 현대상선은 업황은 좋았는데 금강산 관광사업 확대에 따른 손실누적으로 재무구조가 매우 취약해졌고 하이닉스의 경우 LG반도체 인수에 따른 과도한 부채를 보유한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금난에 봉착했다. 이러한 사유들 이외에도 9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결과적으로 그룹경영을 위축시킨 점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건설에 대한 국민의 정부 입장은 어땠나. ▦2000년 5월 현대건설의 자금사정이 무척 어려웠는데 10개월 정도 끌다가(2000년 10월 말 1차부도 발생) 2001년 3월28일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현대건설 처리방향을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청산, 법정관리, 출자 전환 및 신규지원을 통한 회생 등 3가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진념 장관, 이근영 금감위원장, 이기호 경제수석, 권오규 청와대 금융비서관, 김경림 외환은행장, 변양호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금감위국장, 강기원 금감원 부원장보, 나 등 10여명이 오전8시에 모여 3시간반 가량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떤 얘기가 오갔나. ▦재경부 안은 현대건설의 법정관리였다. 금융감독위원회는 현대건설의 문제는 단순히 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8,400억원을 신규지원해 살려야 한다고 했다. 외환은행은 청산ㆍ법정관리ㆍ회생 등의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당시 현대건설은 국내 아파트 4만여가구를 짓고 있는 중이었고 해외 수주 잔고는 103억달러, 국내 하도급업체 수가 2,000여개에 이르고 있어 도산할 경우 해외공사 차질로 인한 우리나라 신인도 하락, 공사중단 및 지체에 따른 지체배상금 지불, 하청업체의 연쇄도산, 건설시장의 불안 등이 우려되며 현대건설이 그룹의 모기업으로 상호출자구도로 얽혀 있어 계열사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칠 것을 매우 우려했다. 현대건설이 도산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채권금융기관들이 수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회사채시장도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떻게 결론지어졌나. ▦진 장관이 금감위 안대로 8,400억원을 지원하면 어떠냐고 물어서 6~7개월 버티는 데 불과하고 확실하게 살리려면 1조4,000억원의 출자전환, 신규출자지원 1조5,000억원 등 2조9,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가운데 신규출자지원이 문제였다. 진 장관이 1조5,000억원의 신규지원으로 수조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면 지원해 살리는 것이 경제원리상 맞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진 장관도 내심 살리려는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 최초 재경부 안은 법정관리였지만 금감위와 채권단이 살리자고 하니 재경부도 금감위와 채권단의 의견을 존중해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생각했다. -현대건설 지원 후속 조치는 잘됐나. ▦출자전환에 은행들은 동의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회사채를 보유한 투신사들이 문제였다. 투신사들은 고객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회사 임의로 출자전환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출자전환이 가능한 채권금융기관들은 채무액에 비례해 기존 대출금이나 보유회사채를 출자전환하고 투신사들은 손실분담 원칙에서 투신사 보유 회사채를 만기 연장하고 10%가 넘는 금리를 2%대 중반으로 인하해주기로 했다. 신규지원 1조5,000억원은 투신자를 제외한 채권금융기관이 7,500억원을 맡고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지원을 통해 7,500억원의 CB를 발행해 마련하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보증안이 마련된 데 대해 신용보증기금은 강력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현대 구조조정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현대상선의 자금난이 불거진 데는 일부 재벌 금융사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현대그룹이 어렵다고 하니까 2000년 3월께 재벌금융사들이 현대상선으로부터 3000억원 가량의 크레디트 라인을 갑자기 회수해버렸다. 해당 회사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실인 것이 틀림없다. -하이닉스 매각 때는 어땠나. 외환은행은 마이크론에 매각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매각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고 매각조건에 반대했다. 마이크론이 인수한 뒤 혹시 하이닉스를 청산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했지만 마이크론은 하이닉스를 잘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론이 처음에는 인수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제시했지만 나중에는 총액 40억달러까지 올렸다. 현금이 아니라 마이크론 주식 38억달러어치를 주고 2억달러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 부문으로 분리해 비메모리 부문에 직접 투자하는 방안이었다(마이크론은 메모리 부문만 인수하겠다고 했음). 마이크론 주식을 인수대금으로 받았을 경우 주식시장 동향에 따라 막대한 손해도, 이익도 볼 수 있어 위험이 매우 컸다. 더구나 하이닉스를 인수한 뒤 하이닉스에 15억달러를 대출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대출금리는 시장변동 금리가 아니라 7~8년간 5~6%의 금리로 고정시키자고 했다. 국내 채권단 입장에서는 금리손실을 헷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도 부담해야 했다. 15억달러 대출에 대해서 우리는 마이크론 본사의 보증을 요구했지만 마이크론은 하이닉스 공장을 담보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만일의 경우 하이닉스의 문을 닫고 철수해버리면 돈을 떼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하이닉스에 대해 정부가 무조건 매각해야 한다며 압박해서 협상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하이닉스 매각에는 정부최고위층의 의지가 담겨 있었지 않나 추측된다. 채권단이 반드시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있던 마이크론으로서는 당연히 아주 헐값에 사려고 했다. 정부는 하이닉스의 회생이 불가능하니 손실이 발생되더라도 하루빨리 매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 같다. 산업은행과 우리은행도 하이닉스 매각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당시 하이닉스 실사결과 청산가치가 25.4%였는데 그 이상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매각해야 된다는 것이 외환은행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도 마이크론으로의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까지는 외환은행도 협조해야 한다고 해서 2002년 4월29일 채권단회의를 소집해서 MOU 체결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외환은행 내부적으로는 MOU 자체는 법적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체결 뒤 최종 실사과정에서 채권단이 청산가치 이상의 회수가 어려울 때는 매각을 반대하기로 했다. 결국 2002년 4월30일 하이닉스 이사회에서 전원일치로 MOU 추인을 부결시켜 매각은 완전 무산됐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삼성전자 등은 하이닉스에 관심 없었나. ▦삼성전자는 하이닉스를 인수해도 시너지효과가 없고 독과점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인수에 관심이 없었다. 삼성 측에 사적으로 인수 가능성을 물어보았을 때 삼성 측의 반응은 만약 2조~3조원에 사들인 뒤 회사를 청산하면 반도체 시장의 공급 과잉문제가 일시에 해소돼 2~3년 안에 인수금액을 다 회수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이닉스 인수에는 독일의 인피니온사도 관심을 보여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갑자기 인피니온 이사회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협상이 무산되기도 했다. 중국업체도 관심표명이 있었지만 중국업체로의 매각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대계열사가 거의 다 살아났다. ▦현대건설ㆍ하이닉스가 재기에 성공한 게 무척 기쁘고 기억에 남는다. 주채권은행의 확실하고도 치밀한 채무조정이 기반이 돼 회생했지만 여기에 더해 국내건설 경기 및 반도체 시황의 회복, 또 두 회사 임직원들의 피나는 노력도 회사의 재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대석유화학은 외환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주관은행이 바뀐 상태에서 호남석유화학 및 LG석유화학에 분할 매각돼 잘 처리됐고 현대상선도 자동차 운반사업 부문이 스웨덴ㆍ노르웨이 합작회사에 매각돼 유동성에 숨통이 트이면서 회생했다. 통상 알려진 것 외에도 ㈜로템(옛 한국철도차량)과 한국 항공우주산업㈜도 외환은행 주도로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정상화됐다. -당시 현대 구조조정의 원칙은 무엇이었나. ▦지원 여부는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하되 일단 살리려고 결정하면 적기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해 단칼에 구조조정을 끝내야 한다. 대신 대주주는 방만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유지분을 완전히 소각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상식으로 보이지만 막상 실행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사유로 추진이 쉽지 않다. 동아건설도 현대건설 방식으로 처리했더라면 회생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당시 현대건설에 2조9,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모두들 깜짝 놀랬고 일부 시민단체와 학계, 일부 금융기관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조정방법이 이후 SK네트웍스ㆍLG카드의 구조조정에도 좋은 선례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론스타에 대한 헐값매각 논란이 있는데. ▦정부정책 결정라인에 있었던 분들은 2003년 당시 금융시장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금융기관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은행법 예외규정을 적용해 매각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97~2002년 3,000여명의 인력 구조조정, 6,000억원의 증자, 후순위채 발행, 점포ㆍ자회사 통폐합,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통해 꽤 건전해졌다고 판단한다. 내부에서도 3,000억~5,000억원 정도의 자본 확충만 되면 자산건전성도 훨씬 좋아지고 활발한 영업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사모펀드에 매각할 정도로 부실은행이었다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 이연수 약력 ▦44년 서울 출생 ▦경기고 ▦68년 서울대 상대 졸업 ▦68년 외환은행 입행 ▦93년 LA지점장 ▦99년 이사 대우 ▦2000년 부행장 ▦2002년 은행장 직무대행 ▦2002년 안진회계법인 부회장 ▦2005년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 입력시간 : 2007/01/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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